대학 동아리의 공연 저작권 침해…형사처벌 대상인데 봐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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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송한샘 씨어터 인사이트최근 모 대학의 뮤지컬 동아리가 자신들이 유료로 판매한 공연이 우리 회사가 제작했던 뮤지컬 <이프덴>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에 대해 용서를 구해왔다. 우리 작품의 연출, 안무, 동선, 대사 및 이에 맞게 재편곡한 음악, 무대, 의상의 색깔과 스타일, 원작과는 다른 커튼콜 등 공연의 제반 요소를 회사와 저작자들의 사전 허락 없이 아예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 똑같이 따라 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동아리가 원작자로부터 학교 내 아마추어 공연에 대한 스쿨 라이선스를 적법하게 확보한 채 공연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회사의 <이프덴>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다.뮤지컬 <이프덴>은 201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을 당사가 한국어 공연 라이선스를 확보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해외 오리지널 뮤지컬의 한국어 공연 라이선스는 일반적으로 논레플리카(non-replica)와 레플리카(replica) 방식으로 나뉜다. 전자는 원작자로부터 가사와 대사를 포함한 대본과 오케스트라 혹은 밴드 총보를 포함한 음악에 대한 사용권을 허락받고, 이를 바탕으로 공연에 필요한 제반 요소-한국어 대본, 연출, 동선, 안무 및 이들에 따른 음악의 편곡, 그리고 무대, 의상, 영상, 조명 등-을 자체적으로 창작하는 방식이다.
후자는 한국어로 번안한 대본을 제외한 모든 공연의 요소를 오리지널 뮤지컬과 동일하게 제작하는 방식으로,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선임한 해외 연출가, 안무가, 음악감독은 물론 조명, 음향, 의상 등의 디자이너가 내한하여 공연 개막까지의 과정을 진두지휘하기도 한다. 대본과 음악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는 자체적으로 창작하는 논레플리카 라이선스는 거의 모든 것을 복제하는 것과 다름없는 레플리카에 비해 원작자에게 지불하는 로열티가 훨씬 적다.
뮤지컬에서 2차원 텍스트인 대본과 음악을 원저작물이라고 본다면, 이를 바탕으로 여타 제반 요소를 창작하고 융합하여 3차원 텍스트로 만든 공연은 원저작물을 바탕으로 한 2차적저작물이 된다. 실재 상연된 공연은 대본과 음악이라는 원작과 실질적 유사성(conjure up)이 있으며, 동시에 원작과 다른, 사소하지 않은 실질적 개변(substantial variation)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2차적저작물은 원작과 별도의 저작물로 인정되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우리 <이프덴>의 경우 논레플리카 방식의 라이선스 공연이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대본과 음악을 원작으로 한 2차적저작물이며, 한국의 이프덴 역시 브로드웨이 공연과 별개의 독립적인 2차적저작물이라는 얘기다. 만일, 우리가 레플리카 방식으로 이 공연을 제작했다면 번안한 대사와 가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2차적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똑같은 방식으로 재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 <알앤제이(Shakespeare’s R&J)>를 중국의 한 제작사가 공연하면서 미국의 원작자로부터 중국어 공연의 논레플리카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우리 회사로부터 무대, 조명, 연출 등 3차원 텍스트화에 필요한 라이선스를 함께 확보한 바 있는데, 이 역시 한국에서 먼저 선보였던 <알앤제이>가 2차적저작물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그간 대학교 동아리의 공연에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기성 공연을 베끼다시피하거나 상당 부분 참고하여 유사하게 만드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소개된 지 오래된 작품의 경우 심지어 전공학과 공연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곤 했다.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저작재산권의 침해에 해당한다.또한 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의 공개 발표를 결정할 수 있는 공표권, 저작물에 자신의 성명(예명 포함)을 표시할 수 있는 성명표시권, 자신의 저작물과 실제 공표되는 것 사이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저작인격권의 세 가지 권리를 갖는데, 이 역시 학내 공연에 의해 번번이 침해당하기 일수다.
저작권에 익숙하지 않은 교수들도 실수의 위험에 노출된다. 우리회사가 제작했던 라이선스 뮤지컬이나 연극을 전공 학생들의 기말 실습 혹은 졸업 발표회를 위해 대학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곤 한다. 여기에는 당사의 공연용 대본을 포함한 제반 자료들을 제공해달라는 요청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순수 창작 작품과 달리 해외 원작의 한국어 공연 라이선스를 득해 공연하는 작품의 경우, 한국 공연 제작사의 허락을 받더라도 반드시 원작사로부터 별도로 스쿨 라이선스를 확보해야 한다. 이 경우 한국어 공연은 2차적저작물로, 2차적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저작권법 136조에 따르면 타인의 저작권을 무단 침해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두 가지 모두에 처할 수 있다. 또 이와 별개로, 저작권 침해로 발생한 재산적 손해에 대해서 손해배상도 해야 한다. 하지만 학내 공연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실제 처벌이 이루어진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저작권 침해의 기준과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거나, 사실상 비영리 목적의 학내 공연이기에 설사 문제가 되더라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침해를 당한 쪽에서도 학생들의 문화 예술 향유나 역량 강화에 의의를 두는 비영리 공연이라는 것을 참작하거나, 법적 조치를 위해 투입해야 하는 물리적 정신적 비용과 수고에 비해 그 대가가 크지 않기에 훈계방면이나, 공식적인 사과를 받는 정도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 도둑은 도둑이 맞다. 저작권 침해의 본질은 타인이 뼈를 깎는 지난한 고통과 노력의 과정을 통해 이룩한 유무형의 재산을 자신의 사익을 위해 절도하거나 훼손하려 하는 데에 있다.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무비 등 케이콘텐츠의 세계화에 따라 대한민국은 점차 문화콘텐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문화콘텐츠의 저작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역시 산업적 정책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육의 산실인 대학에서, 미래 케이콘텐츠의 주역이 될 학생들이 만드는 공연이라면 지금 당장 남의 눈에 보이는 껍데기뿐인 결과보다는, 그 자체로 피가 되고 살이 될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때로는 힘에 부쳐 프로페셔널한 상업 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법과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