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든가…' 월급으로 먹고사는 작가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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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지난해 소설가 장강명(사진)은 동료 작가 10명과 ‘월급사실주의’라는 문학 동인을 꾸렸다. 문학 자체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힘 있는 문학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란 의문을 품으면서다. 월급사실주의는 시대의 풍경을 적확하게 담아내는 작품이 늘어나야 문학의 가치가 커진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현실 문제의식 소설에 담겠다"
장강명이 꾸린 문학 동인 10인
노동·월급 주제로 쓴 단편 묶어
동인들은 ‘월급’ 그러니까 먹고사는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풀어보자고 했다. 이들의 창작 규칙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둘째, 수십 년 전이나 먼 미래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현장을 다룬다. 셋째, 판타지를 쓰지 않고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장 작가와 뜻을 함께한 작가는 김의경 서유미 염기원 이서수 임성순 정진영 주원규 지영 최영 황여정 등이다. 모두 월급쟁이의 삶을 살아 본 작가들이다. 이들이 우리 시대의 밥벌이를 다룬 소설을 엮어 첫 동인지 소설집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를 최근 출간했다.
‘월급사실주의자’들은 저마다 단편소설 하나씩을 실었다. 비정규직 근무,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는 물론 가사, 구직, 학습 등 ‘지금, 여기’의 노동 현장이 담겨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스쳐 간 사람처럼 익숙하고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어떤 문장들은 단순한 현실 재연 그 이상을 보여준다.김 작가의 ‘순간접착제’에서 주인공 ‘나’는 친구 예은과 대학을 휴학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삼각김밥 공장에서 일한다. 이들이 마카롱 카페 일자리를 잃고 공장으로 향하게 된 건 코로나로 카페 매출이 쪼그라든 사장이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순간접착제 같은 거네요? 카페가 망하지 않게 최소한만 일을 시켜서 임시로 지탱하는 거잖아요.” 돈을 아끼려 다 떨어진 운동화 밑창을 순간접착제로 붙이며 버티던 예은은 사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악의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지만 각자의 자리가 서로의 밥벌이를 위협하는 순간들을 소설은 포착해낸다.
장 작가는 “이 기획이 잘되면 동인 작가를 충원해가며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2025’ 하는 식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다”며 “한국 소설가들이 동시대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쓴 소설이 그렇게 쌓이면 멋지겠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