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안무가' 마이요의 줄리엣, 나에겐 영원한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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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안무가들에게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으냐고 묻는다. 많은 이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꼭 해보고 싶다고 답한다. 음악도 아름답고 스토리도 매력적이라 그만큼 많은 안무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인 게 분명하다.
1940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라브로브스키의 안무를 시작으로 수많은 안무가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켰고 (케네스 맥밀란, 존 그랑코, 루돌프 누레예프 등)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많아지고 있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할수 있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다. 새롭고 현대적인 안무와 단순화된 무대장치와 의상,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조명 효과와 영화 같은 연출력의 ‘드라마 같은 발레’다.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3명의 천재적인 안무가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유리 그리가로비치, 루디 반 단지크)의 줄리엣을 연기했다. 그중 나의 첫 줄리엣과 마지막 줄리엣은 각각 2000년과 2013년에 연기했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줄리엣이다. 그의 줄리엣을 처음 비디오 영상으로 접했을 땐 그 매력을 알 수가 없었다. 당시 VHS비디오 화질도 안 좋았고, 무엇보다 마이요의 줄리엣은 낯설었다. 영국로열발레단의 알렉산드라 페리의 줄리엣 영상을 보고 자라온 나에겐 170㎝가 넘는 장신의 ‘마이요의 뮤즈’,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의 줄리엣은 무척 생소했다.
그녀의 춤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표현 방식은 내가 배운 클래식 발레 마임과는 다른 다소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니멀한 무대 세트는 나에겐 너무 현대적이었다. 2000년 국립발레단 초연 당시 몬테카를로 발레단 조안무가 ‘지오반나’와 작품 연습에 들어가며 진정한 작품의 매력을 알게 됐다. 매일 밤 비디오영상을 보면서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의 몸짓과 사랑에 빠져 그녀의 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발레 무용수로서 모든 게 새로웠다. 발끝이 아니라 마치 일상 생활하듯 뒤꿈치를 디디며 무대에서 걸어보는 일, 사랑에 빠진 연인간의 장난과 다툼과 키스…. 이런 감정들을 발레의 마임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배우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춤으로 표현해야 했다.
모든 감정을 춤으로 말해야 했는데, 20세 초반이었던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툰데다 클래식 발레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온 터라 익숙하지 않았다. 과거의 것들을 잊고 새로운 방식으로 동작과 표현, 안무를 알아가면서 무용수의 몸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20세의 줄리엣은 미완성의, 아직까지는 그저 ‘모방의 줄리엣’이었다.
그 후 유리 그리가로비치. 루디 반 단지크의 작품으로 새로운 줄리엣으로의 경험을 쌓아 나갔고, 2011년 국립발레단에서 다시 마이요의 줄리엣을 만나게 됐다. 공연 당시 설상가상 연습하던 파트너의 부재로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 온 무용수와 공연 이틀 전에 만나 3일간 공연했다. 그 5일간의 짧은 일정은 마치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진 기간처럼 줄리엣으로 살았다. 당시 정명훈 선생님의 지휘로 넓은 바다에서 수영하듯 마음껏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었다. 프로코피예프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커진 만큼 서곡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음악이 시작되면 곧장 작품의 기승전결이 드라마틱하게 연결되어 춤을 출수록 희열을 느꼈다. 음악에 담긴 감정과 그 아름다움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었다.
마이요의 작품은 손끝에서 발끝까지 가득 채운 감정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풀어놓는 과정이었다. 그런 부분을 이해하게 되자 걱정도 됐다. ‘섬세한 감정들이 오페라하우스 같은 큰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나의 감정을 믿고 진실되게 표현하자 관객들이 나와 함께 줄리엣의 행복, 슬픔, 절망을 모두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0대의 줄리엣은 20대의 나와는 또다른 인생의 경험들을 갖고 있었고, 그런 감정과 몸의 표정을 춤으로 풀어내는 데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불 같은 사랑을 하는 동시에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나의 모습을 투영한, 그런 줄리엣이었다.
마지막 줄리엣은 2013년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었다. 당시 5일간의 공연을 원 캐스트로 진행했다. 5일 내내 무대에 섰는데 돌아보면 그땐 ‘그 누구의 모방도 아닌, 계산에 의한 연기도 아닌’, 그저 김지영의 줄리엣으로 춤을 출 수 있었다.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줄리엣 자체가 되어 모든 감정을 무대 위에서 쏟아내고 누구보다 솔직하게 몸과 영혼으로 그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 마치 배우처럼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당시 나는 이 줄리엣이 내 인생의 마지막 줄리엣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공연이 끝나고 일주일동안 매일밤 줄리엣의 꿈을 꾸었다. 줄리엣으로 보냈던 행복한 꿈에서 깼을 때, 내가 더이상 무대 위의 줄리엣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가슴 아픈 사랑앓이를 하고서 나서야 나의 줄리엣을 떠나 보낼 수 있었다. 마이요의 줄리엣은, 나에게 영원한 첫사랑이다.김지영 발레리나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1940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라브로브스키의 안무를 시작으로 수많은 안무가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켰고 (케네스 맥밀란, 존 그랑코, 루돌프 누레예프 등)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많아지고 있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할수 있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다. 새롭고 현대적인 안무와 단순화된 무대장치와 의상, 극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조명 효과와 영화 같은 연출력의 ‘드라마 같은 발레’다.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3명의 천재적인 안무가들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유리 그리가로비치, 루디 반 단지크)의 줄리엣을 연기했다. 그중 나의 첫 줄리엣과 마지막 줄리엣은 각각 2000년과 2013년에 연기했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줄리엣이다. 그의 줄리엣을 처음 비디오 영상으로 접했을 땐 그 매력을 알 수가 없었다. 당시 VHS비디오 화질도 안 좋았고, 무엇보다 마이요의 줄리엣은 낯설었다. 영국로열발레단의 알렉산드라 페리의 줄리엣 영상을 보고 자라온 나에겐 170㎝가 넘는 장신의 ‘마이요의 뮤즈’,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의 줄리엣은 무척 생소했다.
그녀의 춤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표현 방식은 내가 배운 클래식 발레 마임과는 다른 다소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니멀한 무대 세트는 나에겐 너무 현대적이었다. 2000년 국립발레단 초연 당시 몬테카를로 발레단 조안무가 ‘지오반나’와 작품 연습에 들어가며 진정한 작품의 매력을 알게 됐다. 매일 밤 비디오영상을 보면서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의 몸짓과 사랑에 빠져 그녀의 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발레 무용수로서 모든 게 새로웠다. 발끝이 아니라 마치 일상 생활하듯 뒤꿈치를 디디며 무대에서 걸어보는 일, 사랑에 빠진 연인간의 장난과 다툼과 키스…. 이런 감정들을 발레의 마임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배우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춤으로 표현해야 했다.
모든 감정을 춤으로 말해야 했는데, 20세 초반이었던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툰데다 클래식 발레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온 터라 익숙하지 않았다. 과거의 것들을 잊고 새로운 방식으로 동작과 표현, 안무를 알아가면서 무용수의 몸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20세의 줄리엣은 미완성의, 아직까지는 그저 ‘모방의 줄리엣’이었다.
그 후 유리 그리가로비치. 루디 반 단지크의 작품으로 새로운 줄리엣으로의 경험을 쌓아 나갔고, 2011년 국립발레단에서 다시 마이요의 줄리엣을 만나게 됐다. 공연 당시 설상가상 연습하던 파트너의 부재로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 온 무용수와 공연 이틀 전에 만나 3일간 공연했다. 그 5일간의 짧은 일정은 마치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진 기간처럼 줄리엣으로 살았다. 당시 정명훈 선생님의 지휘로 넓은 바다에서 수영하듯 마음껏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었다. 프로코피예프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커진 만큼 서곡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음악이 시작되면 곧장 작품의 기승전결이 드라마틱하게 연결되어 춤을 출수록 희열을 느꼈다. 음악에 담긴 감정과 그 아름다움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었다.
마이요의 작품은 손끝에서 발끝까지 가득 채운 감정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풀어놓는 과정이었다. 그런 부분을 이해하게 되자 걱정도 됐다. ‘섬세한 감정들이 오페라하우스 같은 큰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나의 감정을 믿고 진실되게 표현하자 관객들이 나와 함께 줄리엣의 행복, 슬픔, 절망을 모두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0대의 줄리엣은 20대의 나와는 또다른 인생의 경험들을 갖고 있었고, 그런 감정과 몸의 표정을 춤으로 풀어내는 데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불 같은 사랑을 하는 동시에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나의 모습을 투영한, 그런 줄리엣이었다.
마지막 줄리엣은 2013년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었다. 당시 5일간의 공연을 원 캐스트로 진행했다. 5일 내내 무대에 섰는데 돌아보면 그땐 ‘그 누구의 모방도 아닌, 계산에 의한 연기도 아닌’, 그저 김지영의 줄리엣으로 춤을 출 수 있었다.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줄리엣 자체가 되어 모든 감정을 무대 위에서 쏟아내고 누구보다 솔직하게 몸과 영혼으로 그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 마치 배우처럼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당시 나는 이 줄리엣이 내 인생의 마지막 줄리엣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공연이 끝나고 일주일동안 매일밤 줄리엣의 꿈을 꾸었다. 줄리엣으로 보냈던 행복한 꿈에서 깼을 때, 내가 더이상 무대 위의 줄리엣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가슴 아픈 사랑앓이를 하고서 나서야 나의 줄리엣을 떠나 보낼 수 있었다. 마이요의 줄리엣은, 나에게 영원한 첫사랑이다.김지영 발레리나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