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연금 투자수익 소득세율 절반 낮춰
입력
수정
지면A8
최저 소득세율보다 낮은 15% 적용퇴직연금 시장이 잘 성장하려면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 연금에 충분한 자금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상품이 서로 경쟁하고 국내외로 폭넓은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다. 각국이 퇴직연금 가입·납부율을 올리고 가입자 중간 이탈을 막으려 힘쓰는 이유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이 가장 높은 호주는 각종 인센티브와 규제를 적절히 섞은 퇴직연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연금 수령 후엔 투자수익 비과세
가입자 미납시 국세청이 강제징수
긴급상황 아니면 중도인출 막아
일단 세제 혜택이 크다. 가입자가 은퇴 전에 개인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을 통해 얻은 투자 수익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세율인 15%를 적용한다. 호주의 중간 소득구간인 4만5001~12만호주달러(약 3890만~1억380만원)에 적용하는 세율(32.5%)의 절반 이하다. 소득세율 최저구간에 적용하는 수치(19%)보다 낮다.은퇴 후에 받는 혜택은 더 크다. 호주는 60세 이후부터 퇴직연금 수령을 선택할 수 있다. 가입자마다 자신의 슈퍼애뉴에이션 계좌에서 일정액을 받으면서 나머지 돈은 계속 펀드 등에 가입해 굴린다. 퇴직연금을 받는 동안 슈퍼애뉴에이션 계좌에서 발생한 투자 수익에는 아예 과세하지 않는다. 퇴직연금 수령액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글렌 매크리아 호주퇴직연금협회 정책총괄(CPO)은 “젊은이에게 퇴직연금은 ‘당장 쓸 수 없는 돈’으로만 보이기 십상”이라며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하도록 유도하려면 세금 혜택 등의 당근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찍’도 쓴다. 호주의 퇴직연금은 강제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방법 등을 근거로 퇴직연금 가입, 납부를 세금과 같은 의무로 취급한다. 호주 국민으로 호주에서 일하는 18세 이상 근로자는 모두 퇴직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이를 어긴 사업자는 연방법에 따라 처벌받는다.가입자의 미납도 강력 단속한다. 올해 기준 호주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분기별로 소득의 11%를 납부해야 한다. 사업자가 근로자 급여에서 이만큼을 떼고 근로자의 계좌에 입금하는 식이다. 이를 미납하면 국세청이 개입해 징수한다. 매크리아 CPO는 “국세청이 강제 징수하면 벌금 격의 비용이 추가로 붙는다”며 “이 때문에 퇴직연금을 미납한 채로 두는 경우가 극히 적다”고 했다.
중도 인출도 엄격히 관리한다.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긴급히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집의 거주권을 뺏기는 경우 등 주요 사유가 없으면 가입자가 퇴직연금을 중간에 인출하지 못한다. 은퇴자라도 20만호주달러(약 1억7300만원) 이상을 일시금으로 인출하면 최고 세율로 세금을 중과한다.
연금 전문 자산운용·컨설팅업체 머서의 데이비드 녹스 시니어파트너는 “중도 인출과 일시금 수령은 퇴직연금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퇴직연금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선 강제성과 인센티브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구조를 잘 짜두면 은퇴자의 연금 활용 선례가 나오면서 국민들도 퇴직연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고 덧붙였다.
시드니=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