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CB 발행"…고금리가 美회사채 시장 트렌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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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등급 기업 CB 발행액 10년만 최대치 기록미국에서 투자 등급을 부여받은 건실한 기업들이 통상 투기 등급(정크) 기업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전환사채(CB)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차입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책이라는 분석이다.
채권금리 치솟자 금리 낮은 CB 선호 심리 커져
27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자료를 인용해 투자 등급 기업들이 올해 들어 현재까지 발행한 CB 누적 규모가 120억달러(약 16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최소 10년 만에 최대치이며, 평년 대비 3배 많은 수준이다. 이 기간 CB는 전체 채권 발행액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작년(7%‧총 발행액 20억달러)과 비교하면 비중이 4배 넘게 커졌다.최근 몇 달 새 에너지 기업 센터포인트에너지, 부동산 투자 신탁 코퍼레이트오피스프라퍼티스트러스트(COPT), 인프라 투자 기업 HASI 등이 줄줄이 CB 시장에 진입했다. 모두 투자 등급 기업들이다. 이 기간 다수 기업의 회사채 재융자 기한이 도래하면서 CB 발행을 가속화했다. 주가가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신주 발행에 따른 기존 주주 지분 희석 위험이 줄어든 점도 한몫 했다.투자은행(IB) 제프리스의 제시 마크 글로벌 주식시장 책임자는 “전통적으로 (회사채 등을) 직접 발행하는 경향이 컸던 기업들이 CB 시장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CB는 발행 기업의 주가가 특정 수준(통상 채권 발행 당시 대비 25~35% 상승)까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옵션)이 포함된 채권이다. 옵션을 주는 대신 일반 채권 대비 이자 수준이 낮다. 이 때문에 장기 성장 가능성은 높게 평가되지만, 투자 등급이 낮아 돈을 빌릴 때 높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선호해 왔다. 미 주식시장이 호황이던 2021년에는 에어비앤비, 펠로톤, 비욘드미트 등 신생 기업들이 CB를 이용해 제로(0%) 금리 대출에 성공하기도 했다.그러나 기준금리 상승과 함께 회사채 금리가 덩달아 6% 가까운 수준으로 치솟자 유틸리티, 부동산, 제조업 등 자금 조달이 비교적 안정적인 분야 기업들까지 CB 시장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발행된 CB의 절반 이상이 정보기술(IT) 부문에서 나온 반면, 올해는 그 비중이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BoA의 CB 전략가인 마이클 영워스는 “투자 등급 기업들도 투기 등급 기업 못지않게 높은 차입 비용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를 절감할 필요성을 느낀다”며 “이들이 전통 회사채가 아닌 CB로 눈을 돌린 덕에 금리를 평균 2~3%포인트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레이팅스는 2024~2026년 사이 매년 약 2조3000억달러(약 3105조원) 규모 기업 부채의 만기가 찰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회사채 발행액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기업들이 채권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63억달러로,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202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주요 기업들의 회사채 상환 일정이 겹치면 CB 발행 속도는 더욱 빨라질 거란 전망이다. 영워스 전략가는 “최근까지 (기업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차환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만기로부터 12~18개월 전에 미리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