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 회고전…RM 소장품도 있다던데

RM이라는 창으로 들여다 본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 대규모 회고전
새(1987).
“저도 심플하게 살고 싶습니다. 장욱진 짱.”

수년 전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전시 방명록에 남긴 이 한마디는 아미(BTS 팬덤)들 사이에서 ‘장욱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에 “RM의 발자취를 좇아 양주에 있는 장욱진미술관까지 다녀왔다”는 10~20대 팬들의 인증샷이 무수히 많이 올라와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 화백의 대규모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표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의 위상, 전시의 뛰어난 완성도와 더불어 ‘RM의 소장품이 6점 나와 있다’는 사실이 흥행에 기름을 붓고 있다.아르떼 웹사이트에만 공개되는 이번 추석연휴 특집 기사에서는 RM과 장욱진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장욱진의 삶과 작품세계를 간략히 소개한다. 큐레이터 인터뷰 등을 포함해 장욱진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 이번 전시의 성과에 집중한 심층 분석 기사들은 10월 6일 아르떼 웹사이트와 포털 및 7일자 한국경제신문 wave섹션에 별도로 게재될 예정이다. 기사 이미지는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공받았다.

RM이 본받고 싶어한 ‘심플한 삶’, 어땠나

예술가 중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 많다. 좋게 말하면 영혼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인 이들의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얘기다. 유명한 화가들 중 연애 및 결혼 관계가 복잡한 사람이 유독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애인을 수없이 많이 갈아치운 것으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가 단적인 예다.

장욱진은 달랐다. 그는 평생토록 아내와 가족에 충실하며 ‘심플한 삶’을 살았다. 그의 관심사는 단 하나, 그림이었다. 학생 시절 어머니가 “밥 먹는 것보다 그림그리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라고 했을 정도다. 평생 그림에만 집중하며 한눈 팔지 않았기에 그의 삶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나무(1986). RM 소장품 관련 내용과는 무관하다.
작품세계도 삶만큼이나 심플했다. 까치, 나무, 가족 등 몇 가지 주제를 계속 그렸다. 작품 크기는 크지 않았다. 자신의 손이 뻗는 범위 내에서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너무 크면 싱겁다”는 게 장욱진의 생각이었다.
언덕 위의 가족(1988). 보기 드문 사선 구도의 그림이지만, 여러 회화적 장치를 통해 안정적인 느낌을 구현해냈다. 두번째 전시장에 있는 '콤포지션' 코너에서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장욱진의 구도 탐구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작은 캔버스에 한정된 주제를 그렸으니 그림이 서로 비슷하거나 단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그림 중에서는 자기복제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만 봐도 그렇다. 끝없이 새로운 기법과 구도를 실험하고 조형적인 탐구를 이어나간 덕분이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끝없는 깊이를 지닌 장욱진의 삶과 예술. RM은 이를 본받으려 하는 게 아닐까.

RM이 한 말에 학예사도 '깜짝'

자화상(1951).
전시장에 나와있는 작품에는 화가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장욱진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림 속에 묘사된 자신의 체형을 조금씩 다르게 그린 게 대표적인 예다. 장욱진의 초기작에서 작가의 모습은 비교적 왜소하게 그려져 있다. 실제로 장 화백은 평생 마른 체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림 속 묘사된 작가의 모습은 점차 커지고 풍채도 커진다. 초기에는 그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탓에 아내가 생계를 도맡아야 했지만, 나중에는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며 스스로와 가족에게 당당해진 것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가족(1981).
1981년작 ‘가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유머러스한 작품에서는 과장된 크기로 그려진 화가가 뒷짐을 진채 아래에 있는 부인을 곁눈질하고 있다. 장 화백의 부인은 “이 무렵부터 화가가 조금씩 당당해졌다”고 회상했고, 장욱진 스스로도 “이 무렵 빚을 처음 갚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가족(1979).
삶의 아픔이 그대로 녹아있는 작품도 있다. 이 그림은 백혈병으로 15세에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다.
노인(1989).
말년의 장욱진은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RM은 이 작품을 보고 전시를 담당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왼쪽 위의 틈이 마치 저승세계의 입구 같아요. 아직 이승에 있는 장욱진 선생님이 앞으로 건너갈 저승의 강을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배 학예사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깜짝 놀랐다. RM의 예술적인 감각이 정말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RM 소장품이 어떤 건데?

이번 전시에는 RM의 소장품 6점이 함께 나와 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절대 비밀”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RM이 자신의 소장작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염려해 어떤 작품인지 함구해줄 것을 미술관에 부탁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방침은 관람에 뜻밖의 재미를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SNS 등지에서는 “RM 소장품이 뭔지 추측하면서 관람했더니 전시가 더 재미있었다”는 후기가 여럿 올라와 있다.아미들을 위한 결정적 힌트 하나를 공개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소장품 6점 중 절반 이상이 RM이 공개한 브이로그에 등장한 적 있는 작품들이다. ‘찐팬’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도 몇 점 발견했지만 RM과 미술관의 뜻을 감안해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 ‘안목이 뛰어나다’고 느낄 만한 작품들이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