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나의 자산이 된다" [최진석의 실리콘밸리 줌인센터]

‘실리콘밸리 줌인센터’는 이 지역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엔지니어,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인물을 ‘줌인(zoom in)’해 그들의 성공, 좌절, 극복과정을 들여다보고 지역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앞으로 줌인센터에 가능한 많은 주민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김호빈 시바이더 회장은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했습니다. 40년 넘게 이곳에 살았으니 ‘실리콘밸리 토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IT 기업에 다니다 컨설팅 서비스 및 시스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전문 B2B 솔루션 업체를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실리콘밸리 한인회장을 지내는 등 지역 사회에 공헌한 이력도 있습니다. 최근 신규사업에 시동을 건 김 회장에게 가장 인상적인 점은 자신의 사업 성공은 물론 실패 사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는 “실패가 부끄럽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가 모두 실리콘밸리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산이자 자양분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최진석 특파원
Q.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대, 단국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한 뒤 1980년 새크라멘토 인근에 있는 칼스테이트 스테인슬러스 경영대학원에 다녔습니다. 학교를 다니다 IT 기업에 취업했습니다. 이후 컨설팅 서비스 및 시스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전문 B2B 솔루션 업체인 ‘넥스트포인트’를 창업해 운영했습니다. 1999~2003년 미국 내에서 인터넷이 본격화한 시대입니다. 기업들에 인터넷을 이용한 비즈니스를 할 있는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사업을 거쳐 현재 모빌리티 솔루션 회사 시바이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0~2011년 제 15대 실리콘밸리한인회장을 역임했습니다.

Q.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은 무엇인가요.
A. 모빌리티 솔루션 중 주차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미국의 주차시스템이 낙후한 점을 주목해 201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주차장 내 공간을 센서로 파악해 이를 안내해주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인공지능(AI) 컴퓨터가 아닌 센서를 탑재한 카메라가 이미지를 분석해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죠. 이러면 운영비용 절감 효과가 큽니다. 실제 개발을 해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포함된 보드를 카메라에 넣어야 했습니다. 2017년부터 시작해 개발에만 2년이 걸렸습니다. 개발해보니 카메라 한 개에 500~600달러를 받아야 했습니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이 책정된 것이죠. 구매 고객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사진=최진석 특파원
Q.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 것 같습니다.
A. 몇 년 전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나누는 대화를 데이터화해서 저장하는 수술실 컴플라이언스 기술 개발에 나섰습니다. 수술실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죠. 자동으로 녹음해 문서화하는 스피치 투 텍스트 기능입니다. 프로토타입까지 개발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접어야 했습니다.Q. 과거 사업 사례도 소개해주세요.
A. 과거 ‘뉴크로스’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유럽 지역에선 MDF(배전반)에서 각각의 집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망으로 광케이블이 아닌 구리선을 사용하는 비중이 높았는데요. 이용자가 집을 이사할 때 기술자가 가서 ‘점퍼’라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걸 자동화하는 일종의 로봇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자금을 유치하고 엔지니어를 고용해 제품 개발을 했습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도이치텔레콤, 터키시텔레콤 등과 접촉했습니다. 이때 한국과 유럽, 미국에 오가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에 각각 75만마일의 마일리지가 쌓일 정도로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 제품을 생산하자는 계획을 세우는 단계까지 나왔는데요. 이때 두 가지 이슈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자금을 대겠다는 프랑스 회사가 이를 철회한 것이고요, 두 번째는 개발 과정에서 회사 지배구조에 문제 등 여러 불협화음이 나왔습니다. 결국 CEO를 내려놓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Q. 사업 실패에서 어떤 점을 느꼈나요.
A. 시장보다 기술이 앞서갔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비즈니스맨으로서 사업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보다 ‘현재 상황을 바꿔보고 싶다’는 욕심이 더 앞서나갔던 것 같습니다.
팀원들 간의 불협화음도 겪어봤습니다. 팀원 간에 의견충돌로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펀딩도 유입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스타트업은 무너집니다. 벤처캐피털(VC) 대표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좋은 사람으로 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Q.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선배로서 창업 희망자에게 조언한다면
A. R&D만 잘한다고 해서 비즈니스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슬이 많아도 꿸 사람이 있어야 하죠. 비즈니스 디벨롭먼트, 프로덕트 마케터, 세일즈가 있어야 구슬이 보배가 됩니다. 실리콘밸리에선 그런 사람들이 돈도 잘 벌고 인정도 받습니다. 방향도 잘 잡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창업해 미국에 진출하고 싶다면 이곳 현지에서 네트워크도 만들어야 하고, 영어도 유창해야 유리합니다. 한국에서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1.5세, 2세, 교포들을 잘 활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진=최진석 특파원
Q. 미국에서 40년 이상 거주한 이민자로서 조언한다면.
A. 1981년 12월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겁먹지 말고 과감하게 움직여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영어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안테나를 번득거리면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많은 신호가 날아오는 데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죠. 삶의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예전에 이민은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민을 결정하기 전에 일단 와서 생활을 어느 정도 해보면 더 확신이 설 겁니다. 꼭 이민이 아니어도 크로스보더의 삶도 역동적이고 흥미롭습니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 노력, 무엇보다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미국에서 주차시스템 사업을 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수평 비교해봤습니다. 한국에도 우수한 솔루션을 가진 업체들이 있더군요. 그래서 한국의 기술을 미국으로 가져와 적용하는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한국과 미국에 오가며 업체를 찾았고, 미국에 시범 적용해 볼 주차장 운영사도 찾았습니다. 현재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 운영상 구체적인 주차 솔루션의 내용이나 기업명을 말할 순 없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현재 추진하고 있는 비즈니스는 그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쌓은 네트워크와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실패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은 것이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패가 아닌 좋은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일 수도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실패는 누구나 합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나의 자산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달려갈 동력이 생깁니다. 인생은 깁니다. 어느 순간에 삶의 정점이 찾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까진 일을 즐기면서, 하나씩 성취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실리콘밸리에서 40년간 살아온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실리콘밸리=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