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35%가 60대 이상…'노년의 질병' 돼가는 우울증

"나이듦 따른 상실이 주요 원인…노인빈곤율·혐오 정서도 한몫"
초고령사회 진입 속 사회문제화 가능성…"초기 발견·치료 중요"
최근 정신과의원을 찾은 이모(75)씨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기 환자 20여명 중 절반 이상이 또래였기 때문이다.

이 병원을 4년째 다니고 있다는 송모(80)씨는 "내 주변만 보더라도 우리 나이대에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그는 가족 문제로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불면증이 생긴 뒤 병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상담 안내 봉사를 하는 백모(78)씨는 "하루에 1∼2명, 많으면 4명 이상이 센터를 방문한다"며 "상담하다 울분을 토하는 사람도 많다.

내 주위에는 우울증으로 3개월이나 입원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우울증이 주요 질병으로 자리 잡으면서 노년기 우울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급격히 초고령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층 건강과 질병 예방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1년 우울증·불안장애 진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우울증 환자의 35.69%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60대 이상 인구의 비율이 25.15%인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인구 1천명당 우울증 환자 수도 60대가 20.7명, 70대가 31.9명, 80대 이상이 31.6명으로 전체 인구 1천명당 환자 수(18.1명)보다 훨씬 많았다.

◇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것들, 우울증을 만든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노년기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상실'이다.

대다수 노인은 노화로 인해 신체기능이 저하되고 고혈압, 퇴행성 관절염 등 다른 질병으로 삶의 질이 낮아지기 마련이다.

은퇴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가족과 친구의 죽음으로 사회적으로 점점 고립되는 상황도 우울증 발병 우려를 높인다.

최명기정신건강의학과 최명기 원장은 "나이가 들수록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소외되기 쉽다 보니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커진다"라며 반대로 신체적 질병이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도 "어르신들은 무릎 통증 등으로 외부 활동을 잘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집 밖에 안 나가면 우울증에 굉장히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높은 노인빈곤율, 노인에 대한 혐오 정서 확대 등 사회적 요인도 노년기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백씨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노인 빈곤율이 제일 높다 보니 자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거기서 오는 가족 갈등도 크다"며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노인 우울증 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자살 위험 커…치매 등 다른 질병 번지기도
전문가들은 노년기 우울증이 치매 등 다른 질병을 야기하거나 심할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관 성균관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교실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 환자의 경우 치매 발병 위험이 같은 연령층의 일반인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우울증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굉장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환자의 10∼20%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며 "노인의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보니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46.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2명)의 2.7배에 달한다.

김 원장은 "우울증 환자는 식욕이 떨어지거나 수면의 질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동반 증상이 건강을 악화시키거나 심장질환 등 다른 질병을 발병시킬 위험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 초기 치료 중요…무기력증·이유 없는 통증도 의심해봐야
전문가들은 노년기 우울증의 경우 초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노년기 우울증 환자 대다수는 우울증 증세를 노화로 인한 신체적 증상 정도로 치부하곤 한다.

최 원장은 "노년기 우울증 환자 대부분은 몸이 아파서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을 전전하다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아 정신과에 오는 경우가 많다"며 "치료받지 않는 숨겨진 우울증 환자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우울증을 방치하면 만성질환처럼 변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치료 시기를 자꾸 늦추면 질병이 만성화되면서 치료 기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초고령층의 경우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최 원장은 "초고령층은 식욕 저하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건강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며 "영양부족으로 섬망이나 치매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질병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평소에 그러지 않던 분이 '만사가 다 귀찮다'며 집에 누워만 있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아프다며 온몸에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 우울증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