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능! 썽! 쌈!" 언어의 벽 넘는 라오스 따오이족 학생들

열악한 교실서 책 나눠 보며 낯선 공용어 숫자부터 익혀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 어려워…학교 대신 농장으로"
"능(1)! 썽(2)! 쌈(3)! 씨(4)! 하(5)! 혹(6)!"
19일(현지시간) 라오스 남부 살라완주(州) 살라완군(郡) 따룽라라오 마을의 한 초등학교에 아이들이 숫자 외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 청사가 있는 시내에서 차를 타고 산길을 따라 1시간30분 들어가야 하는 이 학교에는 소수민족인 따오이족 어린이 121명이 방과후수업을 듣고 있었다.

덥고 습한 날씨지만 에어컨은 없었고 교과서도 부족해 책 한 권을 서넛이서 함께 봤다.

여러 번 물려 입어 해진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2016년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지원하기 전까지 변변한 화장실조차도 없었다.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 꿈은 영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3학년 여학생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자 "의사가 돼 아픈 마을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수줍게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질세라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유니세프는 한국 내 민간 후원자 6명을 라오스로 초청해 현지의 열악한 교육 환경과 단체의 지원 방향을 설명했다.

기자도 후원자들과 함께 이달 17∼22일 6일간 라오스를 찾아 아이들을 만났다. 따룽라라오 마을 아이들이 공부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라오스 공용어인 '라오어'다.

따오이족은 라오스 정부가 인정하는 49개 소수민족 중 크무족의 한 갈래로 고유 언어를 쓴다.

라오어로는 기초적인 대화도 하지 못하는 탓에 학교에서 숫자 읽기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실제로 유니세프가 2019년 라오스 초등학교 졸업반 학생 약 4천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9.6%가 일상적인 단어만 읽을 수 있거나 그 정도도 안될 만큼 라오어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학교에서 숫자 외는 일마저 어떤 아이들에게는 사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물가가 오르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학교 대신 농장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 학교 교장 퉁싸이 셋티짝(38)은 "코로나19 이후로 수입이 줄어들고 일손을 구하지 못한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농장으로 데려가고 있다"며 "지난해에 비해서도 장기 결석하는 학생이 5%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9㎞ 떨어진 따오이족 '훈' 마을 학교도 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반경 4㎞ 내 유일한 학교인 이곳에서는 초등학생, 중학생, 입학 전 영유아까지 모두 138명의 따오이족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한 4학년 학생은 보채는 동생을 안고 달래가며 공부했다.

영유아반에서는 3∼5세 아이들이 라오어를 배우고 있었다.

라오어를 할 줄 아는 마을 주민이 임시교사였다.

아이들은 단어가 적힌 카드를 받아 소리 내어 읽어보며 라오어와 익숙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동행한 유니세프 라오스 사무소 관계자는 "영유아반은 단순히 라오어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집에 혼자 있을 아이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며 "지금도 라오스 아이들 절반 가까이는 이러한 영유아반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2년째 영유아반 교사를 맡고 있는 솜마리 쿤탐짜런(23)는 "마을에서 보조금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상 자원봉사"라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충분한 교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라오스 인구의 53%를 차지하는 라오족의 경우 모어인 라오어에 익숙하긴 하지만 사정이 아주 나은 것은 아니다.

라오족 '동넝' 마을의 초등학교에서는 영유아반부터 졸업반까지 모두 96명이 교실 네 곳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실을 늘린다고 해도 교사가 부족해 학급을 나누기 어렵다고 했다.

라오스에서는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전기중등교육 과정까지 무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데 상급학교로 갈수록 진학률과 졸업률이 떨어진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라오스의 초등학교 등록률은 98.7%였지만 학교를 계속 다니는 학생들은 입학생의 81.9%에 불과했다.

중학교부터는 진학률과 졸업률이 더욱 떨어진다. 따룽라라오 학교의 셋티짝 교장은 "전기중등교육을 마친 많은 아이가 상급학교 진학을 원하지만 집에 돈이 없는 학생은 결국 부모님의 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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