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질색'이란 사람도..."이 감독 영화는 볼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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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김익환의 누벨바그워치"그 사람 좌파잖아. 빨갱이 XX는 질색이야."
영국 거장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냉혹한 관료주의에 대응하는 주인공 다룬 수작
좌파를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좌파라고 낙인을 찍은 사람의 말과 글, 영상을 '독극물' 취급한다.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도 이들에겐 독극물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영화 상당수는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악역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그의 영화 가운데 좌우를 막론하고 추천할 만한 작품들이 몇 있다. 대표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그렇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생존마저 위협하는 냉혹한 관료주의 체제와 이에 대응하는 주인공(다니엘 블레이크) 다룬 수작이다.
○英 관료주의 정면 비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2016년 영화로 프랑스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켄 로치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2006년 작품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이어 이 작품으로 두 번이나 황금종려상을 안았다.주인공 다니엘은 영국 뉴캐슬에 사는 60대 노인이다. 40년 동안 목수로 근무했다. 하지만 심장병이 악화하면서 일을 그만둔다. 그는 아파서 일을 쉬는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질병 수당'을 타기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일자리센터를 찾는다.
심장질환으로 아픈 사람에게 공무원은 엉뚱한 질문을 한다. "혼자서 50m 이상 걸을 수 있나요" "모자를 두손으로 쓸 수 있나요" "전화기 버튼을 누를 수 있나요" 불구가 아닌 심장병 환자인 그는 "모두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래서 질병 수당을 타지 못했다. 질병 수당 대신 실업급여인 '구직수당'으로 눈을 돌린 그는 일자리센터에 문의 전화를 한다.
다니엘이 공무원과 연락이 닿기까지 1시간 48분이나 걸렸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구직수당을 신청해야 한다"는 짧은 답만 들을 수 있었다. "평생 컴퓨터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다니엘은 며칠 동안 인터넷과 씨름을 했다. 다니엘을 만난 옆집 백수 청년은 "구직수당 포기자도 많다"며 "아저씨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게 그들(정부)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다니엘을 도우려는 공무원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 공무원의 상관은 "나쁜 선례가 된다"며 제지한다.어려움을 겪는 다니엘 눈에 그보다 어려운 처지의 한 미혼모가 눈에 띈다. 미혼모 케이티는 구직수당을 위한 면담 자리에 5분 늦었다는 이유로 문전박대 당한다. 다니엘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케이티 가족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자본주의와 관료주의, 복지제도의 부조리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빈민 등이 연대해 위기를 넘는다는 주제다. 그의 대부분 영화에서 관통하는 주제를 이 영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좌고우면 없다…자본주의 정면비판
켄 로치는 1936년 6월 17일생으로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영화 '불쌍한 암소'로 데뷔했고 '케스',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 등을 만들었다. 약자인 노동자들이 연대해 자본주의와 대항하는 모습이 영화 곳곳에서 포착된다. 사회주의적 시각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드러낸다.그의 영화가 자본주의를 평면적으로 묘사한다는 비판도 있다. 부정적면만 담는다는 것이다. 주제가 뻔한 데다 과대평가됐다는 시각도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영화로 다루고, 그 파급력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대체로 호평이 뒤따른다. 자본주의의 맹점과 각종 부조리를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심지어 영화를 통해 실명으로 정치인을 비판하기도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한 배우는 "그 대머리 이름이 뭐였지? 이언 덩컨. 저택 살면서 주택 보조금 깎은 놈. 빌어먹을 민영화, 망할 보수당 놈들"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영국의 보수당 대표와 고용연금부 장관을 지낸 정치인 이언 덩컨을 실명으로 공격한 것이다. 비판의 성역을 두지 않는 켄 로치의 영화란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