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금리 뉴노멀 시대 준비됐는가

김현석 글로벌마켓부장
월가에서 요즘 자주 접하는 말 중 하나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다. 레짐은 장기적으로 형성된 가치와 규범, 규칙의 총합으로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큰 틀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살아오던 지난 수십 년과 다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2020년 팬데믹이 터지기 전 기간을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라고 부른다. 공식 시작점은 없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팬데믹 이전까지를 일컫는다. 세계화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세계적인 저물가, 저금리가 지속된 기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경제적 변동성도 크지 않았다. 1960~1970년대 인플레이션과 금리, 경제적·지정학적 변동성이 모두 높던 시기와는 달랐다.

고물가·고금리 시대가 온다

월가에서는 대안정기가 끝나고 구조적 고물가, 고금리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수십 년간 잠잠했던 인플레이션이 치솟더니,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왔는데도 미 국채 금리가 솟구치고 있는 게 레짐 체인지에 따른 변화라는 것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1년 안에 미 국채 10년 만기 수익률 연 5.5%를 보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1945년 이후 겪어 보지 못한 구조적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 갈등으로 세계화가 되돌려지고, 중국에 쏠렸던 제조업은 리쇼어링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생긴 에너지 공급망 혼란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 높아진 보호무역주의로 세계무역기구(WTO)의 역할은 사라졌다. 게다가 저출산과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선진국의 생산 인구가 줄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겠다며 각국은 막대한 재정 적자를 내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소법(IRA) 등으로 대표되는 산업정책도 갑자기 인기를 끌고 있다. 1990년대부터 세계를 휩쓸던 신자유주의는 보이지 않는다. TS롬바드는 “자유방임과 자유무역, 최소한의 국가 개입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후퇴”라고 분석했다.

커지는 변동성과 좁아진 정책 여지

국제 정치도 예전과 다르다. 유엔이 아무 일도 못 하는 조직이 된 건 오래지만 지난달 열린 유엔 총회에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정상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만 참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회의(G20)에도 가지 않았다. 기존 국제 질서가 흔들리자 핵 군비 경쟁은 확산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간 신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은 유명무실화했고, 중국의 핵탄두는 2022년 1월 350개에서 2023년 1월 410개로 증가했다고 한다. 파키스탄, 인도, 북한 등도 앞다퉈 핵무기를 늘리고 있다.

한국은 수십 년간 세계화로 인한 저물가, 저금리 시대에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아온 나라 중 하나다. 미국의 억지력으로 인한 동북아시아 평화의 혜택도 누렸다. 확실한 건 앞으로 경제·지정학적 측면에서 더 높은 변동성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 여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수십년간 이어질 새로운 시대에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정책을 큰 틀에서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