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진료기록' 안 떼줘 못 크는 펫보험

수의사 반대에 막힌 '동물병원 진료부 발급 의무화'

병원별 진료비 최대 수십배차
소비자 "진료부 발급 의무화해야"

"동물 주인이 처방 따라할 우려"
수의사들은 진료기록 노출 난색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동물병원마다 천차만별인 진료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려동물 보유자(반려인)와 보험사는 진료비 안정화를 위한 동물병원 진료부 발급 의무화를 요구한다. 반면 수의사업계는 오·남용 가능성을 들어 의무화를 반대하고 있다. 국회엔 동물병원 진료기록 발급 의무화를 규정한 수의사법 개정안이 여섯 건 발의돼 있다.

병원 따라 8배 차이 나는 진료비

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602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4분의 1에 달한다. 반려동물 수는 799만 마리로 추정된다. 반려동물 한 마리당 지출하는 병원비는 평균 6만900원으로 조사됐다.

반려동물 진료비는 동네마다, 병원마다 제각각이다. 의료수가가 정해져 있는 국민건강보험과 달리 표준화된 가격이 없다. 농식품부의 지방자치단체별 조사에서 개 초진 진료비는 전국 평균이 1만840원이었다. 진료비가 가장 높은 전북은 1만1387원, 가장 낮은 세종시는 7280원으로 1.5배 차이가 났다. 전북 내에선 최고가가 4만원, 최저가가 5000원으로 격차가 여덟 배에 달했다.

소비자가 진료비를 비교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불투명한 진료비에 따른 불신을 해소할 방안으로 거론되는 게 진료기록부(진료부) 발급 의무화 제도다. 동물병원 진료기록 공개는 대통령실이 지난 4월 발표한 2차 국민제안 정책화 추진과제에도 포함돼 있다.국회에는 진료부 발급 의무화를 규정한 수의사법 개정안이 여섯 건 발의돼 있다. 이 가운데 네 건은 발급에 조건을 달지 않았다. 두 건은 의무화를 반대하는 수의사업계 의견을 반영해 동물 의료사고 확인이나 소송 등에 필요한 경우에만 진료기록 발급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의사업계가 진료부 발급을 거부하는 이유는 동물약품 오·남용 우려다. 대한수의사회는 “동물 소유자가 진료부에 쓰여 있는 질병과 약품 이름을 보고 직접 동물을 진료하면 오진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동물약품은 80% 이상이 수의사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수의사회의 설명이다. 수의사회는 또 소, 말 등 산업동물 거래에서 진료부가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도 내세웠다.

소비자단체들은 동물 보호자의 알권리 보장, 동물진료업 투명성 향상 등을 위해 진료기록 발급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선 영국 호주 미국 등이 진료기록 발급을 의무화하고 있다.

“질병명 표준화도 시급”

보험업계에선 진료기록 발급 의무화가 반려동물보험(펫보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펫보험은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은 보험사가 새로운 먹거리로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다.

펫보험 시장이 커지면 보험료가 내려가고 보장 범위가 넓어져 반려동물 보유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보험업계는 설명한다. 현재 국내에선 11개 보험사가 펫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상반기 말 기준 펫보험 유지계약은 총 8만7911건으로 전체 반려동물(799만 마리)의 1%에 그친다.

펫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로 반려동물 보유자 상당수가 높은 보험료와 좁은 보장 범위를 꼽는다. 보험사들은 반려동물 진료 기록을 확보하면 과잉진료와 보험사기를 방지하고 손해사정을 정확하게 해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보험업계에선 질병명, 진료행위 명칭을 표준화하는 것도 펫보험 활성화의 전제조건으로 꼽는다. 현재는 같은 질병도 병원마다 명칭과 진료 항목을 달리하기 때문에 진료비 차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조만간 펫보험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여기에는 반려동물 등록·진료항목 관련 인프라 개선, 수의업계와 보험업계 제휴 등에 기반한 협력체계 구축 등의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