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업의 운명 가르는 예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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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7
김상봉 고려대 정부행정학부 교수우리나라는 정부 사업이든 지방자치단체 사업이든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예비타당성 분석을 한 뒤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추진 여부가 이 분석 결과에 의해 판가름 나기 때문에 해당 지역사회와 시민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 정치적으로 봤을 때 동일한 사업일지라도 집권세력에 의해 평가 결과가 종종 뒤바뀌는 결과가 도출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필자는 예비타당성 분석평가에 관한 전문 연구와 대외적 분석업무를 수행하면서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분석에 기초해 대규모 사업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현행 제도 운영과 평가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해왔다.사례를 보면 최근 논란이 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지난 정부에서 예비타당성 면제사업으로 선정된 부산 가덕도신공항사업, 역대 정부에서 몇 번이고 정치적으로 활용한 동남권신공항사업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평가 결과가 바뀌어서 한때 논란이 된 경인아라뱃길사업 등 대규모 사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수단으로 예비타당성 분석을 활용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지금까지 민감한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분석 결과는 항상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의 요소를 제공해왔다.
예비타당성 분석 결과로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일종의 ‘난센스’라 할 수 있다. 예비타당성 분석은 경제적 측면에서 비용편익 분석이 주를 이루는데, 사회경제적 효율성을 도출하는 훌륭한 분석기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절대적 분석 결과라고 하긴 어렵다. 그래서 정치세력에 의해 분석 결과가 흔들리기도 하고, 정치집단은 이런 결과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비타당성 분석 결과의 활용 목적이다. 원래는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예비타당성 분석을 사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뿐 그 결과에 반영하지 않는다. 최적의 사업모델과 경제적인 사업 규모를 도출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수단 즉 도구로 적절히 사용한다. 정부재정사업 또는 민간투자사업의 경우 경제성 확보를 위한 적정한 투자 규모 도출의 분석과정 및 수단으로 활용하곤 한다. 그래서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진 않는다. 사업 자체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저성장 시기, 초고령화 저출산 시대 한국 사회에서 예비타당성 결과를 마치 절대자의 판단 결과처럼 신봉해 사업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는 고도경제성장기의 패러다임에 불과하다. 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공공투자사업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예비타당성 모델을 구축하고 제대로 된 활용 목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