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로 목숨 부지 못해"…'쿠데타 바람' 부는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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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 2020년부터 수단과 차드, 니제르, 말리, 가봉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무력 쿠데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분쟁과 괴한들로 인한 치안 부재, 가중되는 경제난 속 아프리카 시민들이 민주주의 팻말을 내걸고 부패한 자국 정부 대신 무력을 대동한 쿠데타를 기꺼이 감수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9건의 쿠데타가 금세기 아프리카에서 성공적인 쿠데타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지난 7월에는 니제르에서 군사 정변이 일어났고, 8월에는 가봉에서 쿠데타로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이 축출됐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대 아프리카의 쿠데타 건수는 1960년대 이후 10년 기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아프리카 여론조사기관 아프로바로미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4개국에서 2014년 이후 군부 정치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36개국 전체로 보면 선출직 공무원이 권력을 남용할 경우 절반 이상인 53%의 아프리카인이 ‘군사 정부를 고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38%로 2014년 이후 최저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인들이 민주주의를 가장하며 허울뿐인 정치, 안보와 번영을 국민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에 신물이 났다”고 분석했다.
안보는 가장 큰 실패로 꼽힌다. 쿠데타 뿐 아니라 각종 분쟁 지역에서 일반 시민들의 인명피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어서다. 노르웨이 오슬로 평화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프리카에서 소규모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89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알카에다 등 지하디스트도 아프리카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등에서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6년 800명 미만이었지만 지난해 1만명을 넘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 콩고도 지하디스트와 내전, 무장 괴한 등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민주주의 가치를 내건 정권보다 무력을 사용해 치안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하는 정권이 아프리카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는 정치적 위기를 악화하는 요인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극빈층 인구는 1990년 2억8400만명에서 2018년 4억3300만명으로 늘었다. 경제 성장률이 인구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가계와 정부 재정도 악화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팬데믹 이후 배 이상 상승했다. 80%의 국가에서 식료품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에 육박한다. 올해 아프리카 정부 수입의 17%가 대외 부채 상환에 사용될 예정으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이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아프리카의 젊은 층들은 탈출을 꿈꾸고 있다. 아프로바로미터 조사에서 18~35세 연령층이 1위로 꼽은 우선순위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남아프리카의 자선 단체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인용해 “지난해 15개국의 18~24세 청년 중 거의 절반이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이코노미스트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대한 절박함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독재자를 상대적으로 기꺼이 고려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한다”고 분석했다. 아프리카 내에서도 이같은 위기의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자유주의자로 평가받는 하카인데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은 최근 아프리카 민주주의자들이 물질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정치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민주주의는 먹어치울 수 없다”며 “인권은 정신은 지탱할 수 있어도 육체는 지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 그 자체의 문제도 있다. 1990년대 아프리카 국가들은 다당제 선거를 도입하는 등 민주주의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장기 집권이 발생하는 등 성숙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아프리카에서 현직 대통령이 출마한 선거는 총 112번이었으며, 이중 88%가 재선에 성공했다.현재 아프리카에서 20년 이상 권력을 쥐고 있는 국가 정상은 9명에 이른다. 이중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에 정식 취임해 현재까지 재선에 성공했으며 내년 대선에서 4선에 도전한다고 최근 공표했다. 아프로바로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국 대통령이 부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3%였다.이코노미스트 계열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아프리카에서 6개국을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하고 있다.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한 국가는 단 한 곳(모리셔스)이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9건의 쿠데타가 금세기 아프리카에서 성공적인 쿠데타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지난 7월에는 니제르에서 군사 정변이 일어났고, 8월에는 가봉에서 쿠데타로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이 축출됐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대 아프리카의 쿠데타 건수는 1960년대 이후 10년 기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아프리카인 반 이상 “군사정부 고려”
아프리카 여론조사기관 아프로바로미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4개국에서 2014년 이후 군부 정치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36개국 전체로 보면 선출직 공무원이 권력을 남용할 경우 절반 이상인 53%의 아프리카인이 ‘군사 정부를 고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38%로 2014년 이후 최저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인들이 민주주의를 가장하며 허울뿐인 정치, 안보와 번영을 국민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에 신물이 났다”고 분석했다.
안보는 가장 큰 실패로 꼽힌다. 쿠데타 뿐 아니라 각종 분쟁 지역에서 일반 시민들의 인명피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어서다. 노르웨이 오슬로 평화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프리카에서 소규모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89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알카에다 등 지하디스트도 아프리카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등에서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6년 800명 미만이었지만 지난해 1만명을 넘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 콩고도 지하디스트와 내전, 무장 괴한 등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민주주의 가치를 내건 정권보다 무력을 사용해 치안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하는 정권이 아프리카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경기부진 지속에 젊은 층 이민 꿈꿔
경기 침체는 정치적 위기를 악화하는 요인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극빈층 인구는 1990년 2억8400만명에서 2018년 4억3300만명으로 늘었다. 경제 성장률이 인구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가계와 정부 재정도 악화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팬데믹 이후 배 이상 상승했다. 80%의 국가에서 식료품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에 육박한다. 올해 아프리카 정부 수입의 17%가 대외 부채 상환에 사용될 예정으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이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아프리카의 젊은 층들은 탈출을 꿈꾸고 있다. 아프로바로미터 조사에서 18~35세 연령층이 1위로 꼽은 우선순위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남아프리카의 자선 단체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인용해 “지난해 15개국의 18~24세 청년 중 거의 절반이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이코노미스트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대한 절박함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독재자를 상대적으로 기꺼이 고려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한다”고 분석했다. 아프리카 내에서도 이같은 위기의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자유주의자로 평가받는 하카인데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은 최근 아프리카 민주주의자들이 물질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정치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민주주의는 먹어치울 수 없다”며 “인권은 정신은 지탱할 수 있어도 육체는 지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 대통령 청렴” 응답 13% 그쳐
정치 그 자체의 문제도 있다. 1990년대 아프리카 국가들은 다당제 선거를 도입하는 등 민주주의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장기 집권이 발생하는 등 성숙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아프리카에서 현직 대통령이 출마한 선거는 총 112번이었으며, 이중 88%가 재선에 성공했다.현재 아프리카에서 20년 이상 권력을 쥐고 있는 국가 정상은 9명에 이른다. 이중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에 정식 취임해 현재까지 재선에 성공했으며 내년 대선에서 4선에 도전한다고 최근 공표했다. 아프로바로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국 대통령이 부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3%였다.이코노미스트 계열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아프리카에서 6개국을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하고 있다.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한 국가는 단 한 곳(모리셔스)이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