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나에게 가장 커다란 사람

[arte] 이자람의 소리
당신은 ‘스승님’이라 했을 때 떠오르는 이가 있는가?
스승님 이라는 단어가 뭔가 좀 내 삶과 멀다 느껴진다면, ‘선생님’이라 했을 때는 누가 떠오르는가? 그리고 지금 떠오르는 그는, 당신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이미 칼럼을 통해 알아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칼럼에는 3인칭 호칭에 있어 ‘그’와 ‘그녀’를 모두 통칭하는 ‘그’만이 있다. 내 글 속 모든 ‘그’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하다. )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무섭고 목석 같은 사람이었다. 내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내게 닥쳐온 남학생들의 괴롭힘을 엄벌로 다스려 내 삶을 어둠에서 빛으로 꺼내준 은인이 되었다(그의 건강과 행복을 늘 빈다). 6학년때의 담임 선생님은 일기장을 편지삼아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때론 친구처럼, 때론 삶의 선배처럼 나의 고민들을 성장시켜주었다. 공교육 제도를 가진 이 사회에서 해마다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나며 삶을 배워나갔다. 때로는 그들을 오해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일정 시간과 경험이 쌓인 후엔 그러한 마음들이 대개 사랑과 신뢰와 믿음으로 변화하는 성장을 겪으며, 그 과정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각 1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마다 새로이 만나 관계를 맺었던 모든 담임 선생님들과 각자의 것을 최선으로 가르치는 수많은 과목 담당 선생님들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법과 태도를 배웠다. 이것은 공교육이 내게 선물한 배움과 성장의 수혜다.

공교육 이후의 대학생활에서 만난 교수님들 또한 좋은 선생님들이 되어주었다. 물론 모두가 좋진 않았다. 세상의 모든 학생들이 다양하듯, 선생님들도 다양한 개인들이니. 이전만큼 친절한 언어가 아닌,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그들의 방법이 내 눈엔 참 멋졌고, 어떤 부분은 삶의 가치를 변화시켜 주었으며, 어떤 부분은 너무도 닮고싶었다.

때로는 ‘저 선생님은 그다지 아는게 많은거 같지 않은데?’라며 얕잡아 보다가도 그들의 속도에 맞춰 결국 커다란 배움을 얻게되면 그제서야 뒤통수를 크게 한방 맞으며 겸허해졌다. 내가 만나온 모든 선생님들은 다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었으며, 먼 길을 돌더라도 그를 믿고 따랐을 때 그 모든 과정이 온전히 나의 거름이 되었다. 학교라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도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어린시절, 공연을 통해 알게된 어르신 께서는 차근차근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 음식, 음악, 공간들을 15년간 하나씩 소개해주었고 이러한 어르신의 모습을 통해 삶에서 내가 먼저 향유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배웠으니 그 어르신은 내 삶의 커다란 스승이다.

<억척가>의 큰 성공* 이후 삶의 방향을 잃은 듯 했던 시기에 묵묵히 자신의 욕망의 크기와 방향을 따라 걸어가는 친구를 만나 그의 모습을 관찰하며 내 삶의 가치를 무엇에 둘 것인가 돌아 보았으니 그 때 만난 그 친구 또한 내 인생의 큰 스승이다. 선생님의 개념을 확장하다보면 사실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두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변화시키고 내게 영감을 주는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그 모든 훌륭한 선생님들 중에 가장 으뜸인 선생님들은, 평생을 “제 선생님은요” 하고 말을 꺼내 소개해 온 판소리 스승님들이다. 내게는 세 분의 판소리 스승님이 있다. 첫번째 스승님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만나 대학교 2학년 때까지 10년간 모셨고, 첫 스승님이 세상을 떠나신 이후 만난 두번째 스승님은 심장마비로 급히 돌아가시기 전까지 5년간 사사했으며, 세번째 스승님이자 현재 스승님 밑에선 12년간 느린 속도로 사사했다. 지금도 가끔 스승님과 한 무대에 설 때마다 스승님의 무대를 관찰하며 여러 자극을 통한 큰 배움을 획득한다. 판소리에서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인생을 만나는 일이다.
판소리의 스승과 제자는 어쩔 수 없이 수년을 함께 보내야 한다. 강산제 <심청가> 전판을 전수 받는데 4~5년이 걸리고, 동초제 <춘향가> 전판을 전수 받는데 8~9년이 걸렸다. 스승님과 그 길고 지난한 전수의 시간을 함께 겪는 동안, 그의 가르침을 내 몸에 입혀 보고 내 것으로 체득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소리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철학까지 가랑비에 옷 젖어들 듯 배웠다.

판소리 사설로부터, 그 사설을 해석하는 스승님의 해석으로부터, 일상을 사는 스승님의 삶의 태도로부터, 사람들의 입으로 듣는 스승님의 명망으로 부터, 그 모든 것들 사이에 중심을 잡고 서 있어야 했던 모든 경험으로부터, 배움은 끊임없이 나를 향해 흘러 넘쳤다. 그렇기에 판소리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인생을 만나는 일이며 그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삶의 철학을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기도 하다.

판소리 스승님께 소리를 전수받는 시간을 하나의 그림에 비유한다면, 마치 스승이 만든 커다란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며 그 우산 아래에서 나다운 우산을 이리저리 만들어보는 일과 같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온몸으로 비를 맞아야 할 때가 오면, 나 스스로 우산을 들고 장대비 아래 서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더 먼 언젠가는 내 우산 아래 누군가를 초대하여 그가 자신의 우산을 만들어가는 시간동안 우산을 씌워주며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어가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장르이기에 그렇다. 또한 국가의 무형의 보물 이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순환해야할 의무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무대위에서 나의 판소리 스승님들을 소개할 때 늘 행복하다.
그들이 평생 겪어왔을 시간들을 경외하고, 판소리에 대한 끝도 없이 순수한 그 열정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스승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겪어 온 덕분에, 나보다 앞서 삶을 살아온 모든 어른들을 더욱 존경할 수 있고, 그들이 내뱉는 말들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좋은 습관도 체득했다. 그러니 판소리 스승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온 모든 시간은, 비단 판소리에 국한된 배움이 아닌 삶을 대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배움이며 훈련이었던 것이다.

내가 보낸 시간보다 짧은 시간의 생을 보내며 살아오고 있는 수많은 인생의 후배들이 자신들의 좋은 스승님을 만나 -그것이 꼭 판소리 스승님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인생의 지혜를 이어받고 아래로 물려주는 일들을 하기를 바란다.

인류는 그렇게 지탱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 갈 것이니 말이다.
*<억척가>의 성공과 그 이후의 변화한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2022년에 발간된 에세이 <오늘도 자람>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