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멈춰 있는 한국 농구…일본과 격차 벌어지는 건 '시스템 문제'

'구식 농구' 비판받는 추일승 감독, 지난해엔 '선진 농구' 이식하려
연령별 대표부터 '일관된 스타일' 추구하는 일본 "대회마다 책 한권 보고서"
"'우리나라도 이런 농구를 하는구나'라는 반응이 나오게 하고 싶어요."
지난해 5월 우리나라 남자 농구 사령탑으로 부임한 추일승 감독이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밝힌 포부다.

당시 추 감독은 한국 농구의 경기 방식도 국제적인 흐름에 맞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포부와 달리 1년 5개월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추 감독을 향해서는 '구식 농구를 한다'는 비판만 가득하다.지난 4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5∼8위 순위전에서 이란에 82-89로 패한 추일승호는 역대 최저 성적이 확정됐다.

잘해야 7위, 못하면 8위다.

한국이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에 들지 못한 건 이전까진 2006년 도하 대회(5위)뿐이었다.결과만큼이나 현대 농구의 핵심으로 꼽히는 공간 활용, 빠른 트랜지션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경기력에 팬들의 실망이 크다.

역설적인 건 추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이런 특성을 이식하려는 데 앞장선 지도자라는 점이다.

지난해 7월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서는 추 감독의 의도대로 이런 측면이 어느 정도는 코트에서 구현됐다.추 감독은 2m 포워드가 직접 리바운드를 잡고 상대 코트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공수 전환 속도를 높이려 했다.

내외곽 수비가 모두 가능한 자원으로 채워서 체급 차에 따른 수비 문제를 최소화하려 했다.

지난해 6월 필리핀과 두 차례 국내 평가전에서 이 역할을 맡은 선수가 여준석(곤자가대)이었고, 아시아컵에서는 최준용(KCC)이었다.

송교창(상무)도 공수에서 역할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부상·소속팀 집중 등을 이유로 엔트리에서 사라지자 추일승호도 방향을 잃었고, 골밑 공격에 집중하는 익숙한 농구가 다시 코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선진 농구'로 발전을 순전히 지도자 한명의 '개인 기량'에 맡겨놓은 한국 농구의 현실을 보여준다.

추 감독이 원하는 자원을 활용했던 부임 초기에는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모습이 나왔으나, 여건이 따라주지 않자 이런 흐름에서 바로 벗어났다.

이는 지도자의 역량과 무관하게 한국 농구의 질적 성장을 견인하는 시스템의 부재와 연결된다.

허술한 구조는 최근 성장하는 일본과 비교에서 뚜렷해진다.

대한민국농구협회에 상응하는 조직인 일본농구협회는 '일본 농구의 기준 2016'을 발표하면서 명확한 목표를 정해뒀다.

2030년까지 4년 단위로 달성할 목표를 세워뒀다.

2020년까지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3명 배출·2020 도쿄 올림픽 출전 등을 노린 일본은 2024년까지는 NBA 선수를 5명까지 늘리고, 2023 FIBA 월드컵 16위 안쪽에 진입하겠다고 했다.

이 목표를 조금 더 현실에 맞게 조정한 게 '일본 농구의 기준 2021'이다.

일본 농구는 이 청사진대로 차곡차곡 성장 중이다.

여기서 일본은 NBA 선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해외에서 활약할 선수 10명'으로 목표를 바꿨고, 2024 파리 올림픽 출전·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정조준했다.
구체적으로는 아시아 랭킹 1위, 남녀 모두 연간 강호 팀과 10경기 맞대결, FIBA 내 지위 향상 등 현실적 목표를 설정했다.

일본은 이를 점차 이뤄가고 있다.

일단 명실상부 아시아 최강으로 올라섰다.

지난달 열린 FIBA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3승(2패)을 챙긴 아시아팀이 일본이다.

지난해 유럽농구선수권대회 8강에 오른 강호로, NBA 유타 재즈의 간판 포워드 라우리 마카넨이 버티는 핀란드도 98-88로 잡았다.

자국 최고의 무기인 하치무라 루이(LA 레이커스)가 뛰지 않았는데도 저력을 보인 것이다.

아시아에 1장만 분배된 2024 파리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며 계획대로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일본농구협회가 공개한 2016년 이후 사업보고서를 종합하면, 이는 국제 농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실로 봐야 한다.

일본은 국가대표팀 전력 강화안의 핵심으로 연령별 대표부터 성인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스타일 확립'을 꼽는다.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대표팀을 은메달로 이끌었던 톰 호바스 감독이 남자팀에 부임한 2021년부터는 공개적으로 빅맨을 아예 양쪽 코너 3점 라인 밖으로 빼버리는 '5 OUT'(전원 외곽으로), 3점 농구 등을 지향점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경기에서 우리나라에 '충격패'를 안긴 그 농구가 바로 호바스 감독이 이식하려는 경기 방식이다.

FIBA 월드컵에 나온 선수들이 전부 빠진 '2진급' 일본을 이끈 지도자는 호바스 감독을 보좌하는 코리 레인즈 코치였다.

2019년 사업보고서에서는 이를 대표팀 전력 강화책의 일환이라 명시한다.
추후 월드컵·올림픽 등에서 선전을 염두에 두고, 어린 세대 선수들에게 세계 무대에 통할 경기 방식을 미리 도입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1진급 팀의 코치를 연령별 대표 등 2진급 팀의 감독으로 투입하는 방책을 시행 중이다.

협회 차원에서 농구 생태계의 '정점'인 대표팀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연령별 대표와 프로리그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다져놓은 덕에 조금씩 성과가 나오는 것이다.

대표팀 선발 때마다 KBL 각 구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최정예 자원들이 각종 이유를 들어 고사하는 일이 반복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손대범 KBS 해설위원은 "(한국 농구의) 방향이 잘못 잡혔다.

포스트업 등 골밑 공격을 옛날 농구라고 하는데, 유럽팀도 그 농구를 하는 데가 많다"며 "다만 우리 장점이 될 수 있냐가 문제인데, 그게 안 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상 선수가 많은 탓인지 하고자 한 농구의 일관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지난해에는 자원이 풍족했으나 올해는 아니다.

이대성(시호스즈 미카와), 최준용 등을 선발하지 않은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선수단 분위기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고 짚었다.

손 위원은 이번 아시안게임의 실패가 일본에 비해 부실한 시스템의 문제가 드러난 현상이라 봤다.
손 위원은 "일본은 대회 하나가 끝날 때마다 책 한권 분량의 보고서를 낸다"며 "농구는 습관의 스포츠다.

일본처럼 3점 농구를 하려고 해도 20∼30대 선수들이 그에 적응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이어 "국내 남자부든, 여자부든 세계 농구 흐름을 알고 (해외와) 교류하면서 전력 분석 능력까지 갖춘 지도자는 사실 없다"며 "지도자 한 명이 해결하기 어렵다면 협회든, KBL이든 국제 농구와 교류한 자료를 모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라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