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발레는 여성의 예술이다?
② 러시아가 발레의 원조?
③ 발레리나는 무조건 새하얀 튀튀를 입나?
④ 군무와 푸에테, 파드되...엄격한 규칙이 있다?
⑤ 발레는 동화 이야기...그래서 지루하다?
발레는 말이 없다. 하지만 말을 한다. 손끝으로, 발끝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아름다운 것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지만,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고통받아야 하는 장르’가 있다면, 아마 발레일 것이다. 무대 위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모습은 한없이 가볍고 우아하다. 하지만 이들이 찰나의 완벽을 위해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다. 한 편의 발레 공연을 위해 무용수들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약 3개월에 걸쳐 땀 흘린다. ‘발레를 하루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선생이 알고, 사흘 안 하면 관객이 안다’는 이 잔인한 진리 때문에 무용수들은 단 하루도 쉬는 법이 없다. 발톱이 사라지고, 뼈마디가 튀어나오고, 온몸이 근육통에 시달려도-그들은 매일 몸의 한계와 싸운다.말없이 말하는 발레는 600여 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프랑스에서 낭만의 꽃을 피운 뒤 러시아에서 훨훨 날개를 달았다. ‘무언의 예술’이 예술가들의 영혼을 더욱 자유롭게 한 걸까. 꿈속을 거니는 듯한 환상과 신비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일정한 질서에 따라 절도 있는 형식미를 뽐내기도, 인간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여주는 자유의 춤이 되기도 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아람 하차투랸 등의 수많은 작곡가는 오직 ‘천상의 춤’ 발레를 위한 음악을 썼다. 발레는 그렇게 언어 없이 눈과 귀로 오감을 진동시키는 세계인의 ‘클래식’이 됐다. 중력을 거슬러 하늘까지 솟아오를 듯한 점프, 제자리에서 중심을 잡은 채 수십 회전을 하는 모습, 온몸의 무게를 오로지 발끝에 실어 움직이는 경이까지…. 발레 무대에선 우리가 상상해온 감각의 한계가 온전히 무너진다.
발레가 지루하고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면, 단 한 번만 무대를 찾아보시라. 작은 몸짓만으로도 심장까지 전해지는 사랑과 기쁨과 분노, 그 감정들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나도 모르게 온 마음을 빼앗겨버릴 테니. 꽤 오래 꿈결 속 같은 무용수들의 몸짓이 눈앞에 아른거릴 테니.
“빌리, 여자들에겐 정상적이지만 남자들에겐 아니야. 남자는 축구, 권투, 레슬링을 해야 하는 거야. 발레는 남자가 하는 게 아니야.”
19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에 빠진 소년 빌리에게 아빠가 분노하며 건넨 말이다. 아빠의 말은 어쩌면 지금도 많은 사람이 발레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생각이다. 발레에 미친 빌리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면서도 정작 ‘발레’라고 하면 우아한 여성들의 공주 같은 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니까. 그런데 틀렸다. 발레는 그 태생부터 ‘남자의 춤’이었다. 발레에 대한 여러분의 편견을 180도 바꿔놓을 정보들을 모아봤다.
발레는 여자의 것? 원래 남자 춤이야
‘발레’ 하면 뒤집힌 우산처럼 생긴 흰 치마 ‘튀튀’가 떠올라서일까. 아직도 발레리노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낯설고 어색한 게 사실이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레가 탄생했을 땐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의 활동이 자유롭지 않던 때인 데다 초창기 발레는 나라의 부를 다른 나라에 과시하기 위한 왕궁의 사교춤이었다. 남성 무용수들이 귀족 앞에서 추는 춤이었던 것. 이탈리아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던 발레는 1553년 14세 때 프랑스 왕궁으로 시집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느 왕비에 의해 프랑스로 전파됐다. 이탈리아 발레 음악가를 프랑스로 데려와 무대에 올리면서 최초의 공식적인 발레 작품 ‘여왕의 발레극’(1581)이 탄생했다. 최초의 궁정 발레 형식은 그 후로 100년이 지나서야 극장이 생겨나며 왕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이후 발레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루이 14세는 ‘왕실 무용 아카데미’를 세워 현재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뿌리를 만들었다. 루이 14세는 궁정 무용으로 발레를 배웠고, 실제 2개월간 7편의 가면극과 발레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태리→프랑스→러시아 거쳐 세계로
볼쇼이 발레단 때문인지 발레의 본거지를 러시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발레는 원래 서유럽의 전유물이었다. 1700년대 말부터 1800년대 초까지 오페라나 연극의 부속품이 아니라 독립된 예술 장르로 발전했다. ‘라 실피드’와 ‘지젤’과 같은 낭만 발레가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에 꽃을 피웠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돌아다니는 요정, 흰 달빛 아래 가녀리고 창백한 요정들이 떠다니듯 움직이는 장면처럼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장면이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다.프랑스가 낭만 발레의 틀을 잡았다면, 러시아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 세계적인 고전 발레 명작을 탄생시켰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규칙과 원칙이 특징이다. 독일의 한 발레단이 러시아 황궁에서 처음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발레의 매력에 빠진 러시아 황제들이 유럽 발레단을 끊임없이 초청하고 군사 교육의 하나로도 발레를 활용했다. 이후 볼쇼이 극장(1776년), 키로프 마린스키 극장(1783년)이 세워지며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발레 무용수는 존경의 대상이 됐다. 이후 유럽에서 발레 인기가 시들해지자 유럽의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러시아로 건너와 활동했다. 쥘 페로(지젤), 생 레옹(코펠리아), 마리우스 프티파(백조의 호수) 등이 차이콥스키와 같은 뛰어난 러시아 작곡가들과 협업하며 ‘고전 발레’ 형식을 완성하고 러시아를 세계 발레의 중심지로 만든다.그런 러시아 발레는 1909년 당대 최고의 무용수들을 모아 35명의 ‘발레 뤼스(러시아 발레단)’를 꾸려 파리 무대에 데뷔한다. 어마어마한 점프 실력을 선보인 바츨라프 니진스키를 중심으로 힘차고 신비로운 발레 레퍼토리를 본 파리지앵들은 열광했고, 이 사건은 이후 러시아와 서유럽 예술가들이 세기의 협업을 하는 계기가 됐다.
“몸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답다”…‘모던 발레’의 거장들
20세기엔 유럽에서 활동하던 ‘발레 뤼스’ 멤버들이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흩어져 모던 발레를 만든다. 조지 발란신은 미국에서 ‘보석’ ‘아폴로’ ‘세레나데’ 등을 선보이며 뉴욕시티발레의 전신인 아메리칸발레단을 창단했고, 유럽에선 모리스 베자르가 ‘볼레로’나 ‘봄의 제전’과 같은 음악을 주제로 극적 장면을 강조한 새로운 형식의 발레 시어터를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네덜란드의 이리 킬리안은 현대 무용 동작과 발레 동작이 절반씩 섞인 듯한 작품을 내놓는가 하면, 스웨덴 마츠 에크는 ‘지젤’이나 ‘백조의 호수’를 정신이상자의 시각으로 바꿔 연출했다. 장 크리스토프 마요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유로운 표현과 기교에 새로운 캐릭터 해석을 더해 영화 같은 발레로 재탄생시켰다. 모던 발레의 안무가와 연출가들은 “사람의 몸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춤의 본질로 돌아갔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의상이 아니라 ‘몸’ 그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간결한 의상과 무대, 조명 등을 주로 쓴다. 발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입었던, 우산을 뒤집은 모양의 치마 튀튀도 벗어 던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모던 발레를 만날 땐 무용수들의 표정과 몸짓, 우리 몸이 원래 가진 그 본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게 최고의 감상법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