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롱크스 계단의 조커도 이곳에 발을 딛고서야 광란의 춤을 시작했다

[arte]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

○ 주말은 오래 그 곳에 남아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도감에 등장하지 않는 풀벌레가 날고 수개월 내내 호수가 얼어붙거나 여름 가뭄에 며칠 동안 씻을 수도 없었던 세계에 살았습니다. 아렌델이나 아토할란(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배경)도 아니면서, 군부대가 몰려 있는 한국의 산간지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어쩌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공허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랐습니다.

‘차라리 주말이 없다면 그 시간만큼 집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을 텐데’라는 가정을 하고는 했습니다. 달력에 표시된 주말을 모두 더하면 이백일이 넘었으니, 복무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막상 그 시간을 아껴봐야 미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 되돌아보며 ‘그 마음이 정말 어렸구나(어리석었구나)’하고 반성했습니다.돌이켜보니 그 시절을 사는 동안 주말에는 더욱 여유롭게 책을 읽었고, 군부대 안 종교시설에 비치된 피아노를 연습하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쉼표와 같은 시간이 없었다면 긴긴 여름과 겨울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주말은 층계참 같았습니다.
후쿠오카 시립미술관_마에카와 구니오_층계참 2

○ 층계참 없는 공포

승강장에 이르기 위해 지하철 역사의 복잡한 동선을 거닐면서, 도심 어디에든 놓인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층계참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층계참은 보행자에게 안전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리듬을 부여해 도시를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계단 중간에 단차가 없이 평평하고 넓은 부분을 층계참이라고 하는데 국내 건축법도 이를 까다롭게 들여다 봅니다. 보통은 계단의 폭과 길이에 따라 층계참을 설치하도록 규정하는데, 안전함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층계참에서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잠시 짐을 내려 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물을 한 모금 마실 수도 있으니 마치 (이제는 대부분 사라진) 골목길과도 같습니다.

층계참과 계단은 구조물이면서 그 자체로 건축입니다.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2,500개의 계단과 80개의 층계참을 엮어 솔방울과 벌집을 닮은 전망대이자 맨해튼의 명물인 베슬(Vessel)을 만들었습니다. 위험한 일이 자주 생겨 지금은 입장할 수 없지만, 베슬의 층계참은 뉴욕시민들에게 무한에 가까운 휴식을 주었을 것입니다. 만약 베슬이 단 하나의 층계참도 없이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쉴 수 없는 계단 구조물이었다면, 공포스럽지 않았을까요?

영화 <조커(2019)>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와킨 피닉스가 한바탕 춤사위를 펼쳤던 브롱크스의 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계단의 중간 중간마다 층계참이 없었다면 너무도 위험해서 열연을 펼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록키가 승리를 다짐하며 올랐던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 로마에서 잠시 일탈을 만끽한 앤 공주가 걸터앉았던 스페인 계단, 폭우를 뚫고 도망치듯 하강한 기택네 가족의 부암동 계단에 계단참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영화 속 명장면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공포를 주었거나 비참함이 커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건축가 임석재 선생에 따르면, 르네상스부터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고대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는 계단의 다원적 속성을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임석재 선생의 책 <계단, 문명을 오르다>에서는 건축가 팔라디오가 계단을 △심미적인 동시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양면성 △통로로서의 기능성과 상징성 △사용자의 동선을 만들어내는 복합성을 지닌 건축으로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위험을 방지하고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계단 연구에는 아마도 층계참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팔라디오의 다양한 계단 건축 실험에도 층계참은 거의 빼놓지 않고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만에 하나 팔라디오가 층계참 없이 빼곡한 계단 건축을 강조했다면, 오마주곡인 <팔라디오(Palladio)>를 작곡한 칼 젠킨스도 3악장 형식의 기악곡 대신 청중과 연주자가 잠시도 쉴 수 없는 불안하고 지루한 음악을 완성하지 않았을까요?


○ 산문의 층계참, 소제목

신문기사나 산문을 읽을 때에도 층계참이 있습니다. 바로 소제목입니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생각의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작가가 고심 끝에 부여한 수많은 소제목에 있었습니다. <태백산맥>을 겨우 읽어냈으면서도 기억에 남는 소제목이 많은 걸 보니 역시 그 중요함이 느껴집니다. <태백산맥>을 비롯해 대하소설의 소제목은 책갈피가 없이도 ‘마지막 읽은 시점’을 기억할 수 있게 했고, 마치 예고편처럼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산문의 소제목이 마치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플랫폼 상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서비스) 영상의 ‘지난 화 요약’이나 ‘다음 화 바로 재생’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신문기사의 소제목(중간제목이 더욱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도 산문에 한결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종이신문의 큼지막한 제목과 굵게 인쇄된 소제목을 읽을 때면, 마치 층계참에 앉아 땀을 닦고 물을 한 모금 마시는 듯합니다. 어려운 분야의 기사일수록 층계참(소제목)에 자주 의지하게 됩니다.

○ 시간의 층계참에 기대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빠른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 나만의 층계참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숲과 도심을 걷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일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고 잠시 머물 수 있는 층계참을 짓는 게 아닐까요? 참 생각이 많아지는 새벽입니다.
추사관_승효상_층계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