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강렬하게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진은숙의 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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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구본숙의 Behind the Scenes2011년 서울시향의 유럽 투어에 동행한 적이 있다.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독일에서의 공연이었고, 이날 공연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은 진은숙 작곡가가 쓴 '생황 협주곡'이었다.
우 웨이는 서울시향이 충실히 반주하는 가운데 신들린 듯한 손놀림으로 경탄할 만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연주가 끝나자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아마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에게 보내는 박수였을 것이다. 잠시 뒤에 진은숙 작곡가가 직접 무대 위에 올라가 협연자에게 박수를 쳐주었는데, 아이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 모습을 찍으면서 과연 작곡가의 머릿속에는 지금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지가 궁금해졌다.나는 사진작가고, 내 작업에는 기본적으로 피사체(들)와 나만 존재할 뿐 이런 식으로 내게 박수쳐줄 대상이 딱히 없다 보니 드는 생각이다. 물론 사진전이라도 열면 많은 분이 왔다 가기는 하지만, 그들은 대개 차분히 둘러보고 그냥 떠난다. 여기에 열화와 같은 박수 따위는 없다. 작곡가도 작업할 때는 기본적으로 오선지와 자기 자신만의 싸움이겠지만, 나중에라도 이렇게 박수를 받을 기회가 있다.
어떤 기분일까. 자신의 작품이 성공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뿌듯할까? 당시에 들었던 생각은 이랬지만, 나중에 작곡가 자신이 어느 인터뷰에서 “늘 혹독하게 반성하며,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고서 반성과 경탄을 함께 느꼈다. 그 진지함, 그 진중함, 그 치열함이 이런 명곡을 탄생시키는 것이로구나 싶었다. 위대한 작품과 멋진 연주에 대한 진심어린 박수, 그리고 그에 대한 진심어린 답례였다.
브레멘은 독일 북부에 위치한 대도시이자 주(州)이다. 우리에게는 그림 형제가 쓴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디 글로케 홀은 이곳의 구시가지에 위치한 콘서트홀인데, 여느 콘서트홀과는 사뭇 달랐다. 바닥과 1400석에 달하는 객석은 진한 월넛 색이고 벽은 녹색이었다. 그리고 본공연 때는 정면 무대 벽이 백색과 파란색의 LED조명으로 바뀐다.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램프를 자주 교체하는 과정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들었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디 글로케'를 유럽 3대 콘서트홀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한다. 그때도 이 분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러 번의 화재와 그에 뒤이은 재건축이 있었던 홀이기에 원형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이날의 현대음악과는 묘하게 어울리는 분위기의 공연장이었다.
다행히 이 공연에서는 촬영할 때 제약에 심하지 않았고, 덕분에 본공연 때 무대 옆 객석 2층 위치에서 진은숙 작곡가의 무대인사를 포착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혼자 촬영할 때는 다양한 화각을 확보하는 것은 기본이며 중요 장면을 잘 포착해야 하므로, 리허설 때 미리 동선을 파악해둬야 한다. 협연자가 있을 경우 악기에 따라 잘 표현할 수 있는 위치도 알아두어야 한다. 본공연때 주어진 프로그램 내에서 발빠르게 위치를 옮겨야 하니 늘 바쁘다.
그렇게 한 공연이 끝나면 온몸은 땀에 젖어있고, 최소 카메라 두 대를 기본으로 가지고 다니다 보니 어깨에는 늘 스트랩 자국으로 벌겋게 흔적이 남아 있다. 만족할 만한 결과의 사진이 나왔을 경우에는 이런 사소한 피로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놓친 컷이 있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대할 때는 무척 속상하다. 다시 리허설도 본공연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공연 사진에서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나는 늘 순발력과 능동성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좋은 공연이라면 시종일관 열기가 가득할 것 같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적지 않지만 무턱대고 찍는다고 그 열기가 온전히 담기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으로 열기가 폭발하는 극적인 순간을 순발력 있게 포착해야 하는데, 이럴 수 있으려면 감나무 아래서 입 벌리고 있듯이 무작정 기다릴 게 아니라 공연의 흐름과 호흡 속에 내가 능동적으로 녹아들어가야 한다.
공연 전에는 큐시트를 받아 프로그램을 미리 숙지하고 가는 편이다. 이 투어 때는 진은숙 작곡가의 협주곡 ‘슈'(이집트어로 '바람'이라는 뜻)에 생황이라는 악기가 쓰인다고 해서 미리 공부하고 갔다. 3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악기인 생황의 이미지는 신라시대 상원사 동종 주악비천상과 조선후기 김홍도 <퐁의풍류도> 및 신윤복 <연못가의 여인>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궁중음악에서도 쓰였다고 하며 현장에서 보니 약간 낯설지만 감미롭기도 하고 힘도 있는, 묘하고도 신비로운 악기였다. 동양의 전통악기와 서양의 음악 언어를 거침없이 자유롭게 결합한 협주곡은 마셜 매클루언이 이야기한 '지구촌'의 음악적 예시 같아 보였다. 동양 작곡가가 서양 음악의 어법에 동양 악기를 결합해 서양에서 동양 음악가들의 연주로 공연하고 이 공연이 서양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다니. 이것이 그리 놀랍지 않은 이 시대, 이 세계야말로 정녕 놀랍지 않은가.이 투어의 리허설 때 촬영한 사진이 도이치그라모폰(DG)이 제작한 [UNSUK CHIN: 3 CONCERTOS] 음반 커버로 사용되었고, 이 음반은 2015년 국제클래식음악상(ICMA) 현대음악 부문 음반상과 BBC뮤직 매거진상을 수상했다. 음반 뒷면에 새겨진 나의 카피라이트를 보고 당시 혼자 얼마나 뿌듯해했는지 모른다. 좋은 음악 덕에 이렇게 멋진 결과도 나오는구나 싶었다.
진은숙 작곡가는 2018년, 12년간 몸담은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자리를 떠나 독일로 가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아쉬운 소식이었지만, 한국음악계로 기회가 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2022년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에 취임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진은숙 작곡가는 현대음악의 거장인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의 제자로,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을 비롯해 살아있는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최고 권위의 상인 아널드 쇤베르크 상(2005년),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작곡상(2011년), 레오니 소닝 음악상(2021년) 등 최고 권위의 상을 잇달아 수상한 작곡가이다.
이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이다. 자연과 인간, 동양과 서양, 시공의 경계마저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음악세계는 정말이지 경탄스럽다.위의 사진은 2011년 디 글로케 홀 객석에 앉아서 악보를 보며 리허설을 듣는 진은숙 작곡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객석에 앉은 채 눈과 귀로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이 참으로 빛나 보였고, 놓치기 아까운 순간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찍었다.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찍어놓은 사진들을 나중에 간추리던 중에 이 사진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게(Nikolaj Nikolajewitsch Ge)의 1884년 작 유화 <레오 톨스토이의 초상 Portrait of Writer Leo Tolstoy>이 그것이었다. 이 그림은 빛도, 창문도 없는 방에서 그려졌다. 하지만 그림 속 톨스토이의 얼굴과 원고지 위의 손은 하나의 조명을 받은 것처럼 빛나고 있다. 빛이 외부가 아니라 톨스토이의 얼굴과 작업하는 손에서 나오고 있는것 처럼 그렸다. 화가의 의도를 알 것 같았고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내 사진에서도 그런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얼마 전 바람이 드디어 선선해지고 추석이 다가올 무렵, 뭔가 재밌는 일이 없을까 하고 있을 때, 통영국제음악제 본부장님의 전화를 받고 하루 종일 작업실을 신나서 웃으며 서성거렸다. 진은숙 작곡가가 한국에 오는 일정에 하루 작업실에 오시기로 한 것이다. 평소에 사람을 잘 만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분으로 알고 있기에 더욱 반가웠다. 늘 다시 뵙고 싶은 분이었다. 그러면서 2011년의 유럽 투어가 생각이 났다. 투어의 마지막 밤엔 만찬도 있었는데, 뭔가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서도 혼자 괜히 어려워서 말 한번 섞지 못하고 쑥스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촬영만 하는 나로서는 무슨 주제를 화제로 꺼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촬영은 서울에서 이루어졌는데, 비가 조금 내리는 날씨였다. 곶감과 보이차를 나누며 촬영하는 도중에 드문드문 대화가 이어졌다. 조용하지만 강직한 아우라는 익히 보아왔던 것이지만, 털털하고 솔직한 말투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참으로 인상 깊었다. 트레이드마크 같은 짙은 눈화장 사이로 빛나는 눈빛이 강렬했고, 조용한 자신감이 엿보였다.어떤 선인이 '터럭 한 오라기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던가. 촬영 후 보정이 필수가 된 이 시대에는 안 어울리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겉모습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의 내면까지 아울러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면 얘기는 다를 것이다. 그게 옛사람의 뜻일 것이고 내 뜻이기도 하다.
특히 예술가의 모습을 담을 때는 더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초상에는 그가 창조한 예술 세계까지도 아울러 담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은숙 작곡가 같은 대가를 찍을 때는 한층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내 작업이 바라던 결과를 내줄까? 다행히 진은숙 작곡가는 맘에 드는 사진이 많다며 몇 십장을 고른 다음 숙소로 돌아갔다. 넉넉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내 작업실이 채워지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위대한 예술혼을 편린이나마 접할 수 있었던, 참으로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