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도 군대 갔는데, 게이머가 안 가?"…병역특례에 '갑론을박' [이슈+]

e스포츠 첫 정식 종목 채택된 항저우 AG
리그오브레전드 한국 대표팀 '전승 우승'
병역특례 받는 프로게이머들에 '갑론을박'
"e스포츠가 스포츠냐" vs "혹독히 훈련"

정치권에선 e스포츠 인식 개선 기대감
"게임 질병 아냐" 산업 지원 약속도
29일 오후 중국 항저우 베이징위안 생태공원 내 e스포츠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경기 리그 오브 레전드(LoL) 대한민국과 대만의 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2대0으로 승리해 금메달을 확정 지은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사진=뉴스1
e스포츠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LoL·이하 롤) 종목 한국 대표팀이 '전승 우승'을 거두면서 롤 대표팀 6명의 선수가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됐다. 다만 '군 면제' 문제에 특히 민감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e스포츠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제공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롤 한국 대표팀은 지난 9월 29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대만에 세트 2-0으로 승리하면서 금메달을 따냈다. 대표팀은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5경기에서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전승했다. 팀은 '페이커' 이상혁을 비롯해 제우스(최우제), 카나비(서진혁), 쵸비(정지훈), 룰러(박재혁), 케리아(류민석) 등으로 구성됐다.이로써 사회복무요원 장기대기(전시근로역)로 이미 군 면제 상태인 페이커 이상혁을 제외한 선수 5명은 국내 프로게이머로서 최초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됐다. 병역법 시행령에 따르면 올림픽 금·은·동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자는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된다. 예술체육요원은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34개월간 544시간의 체육 분야 봉사활동 의무만 제외하면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다. 한국은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인 만큼, '군 면제'는 엄청난 혜택일 수밖에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시즌에 메달을 따내는 선수들을 보면 '군대 안 가겠네'라는 부러움부터 느끼는 남성들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롤 대표팀의 금메달 수확 소식이 알려진 뒤 온라인상에서는 '롤도 군면제인가요?', 'e스포츠가 군 면제되는 게 맞는다고 보냐' 등 글이 쏟아져 나왔다. 땀 흘리고 힘들게 노력하는 운동이 아닌 단지 게임을 잘해서 병역 혜택을 받는 건 불공정하다는 취지였다. 특히 글로벌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비교해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다.

네티즌들은 "방탄소년단도 군 면제가 아닌데", "롤 금메달 군 면제는 뭔가 허탈하다. 내 21개월은 무엇이었을까", "단군 이래 방탄소년단만큼 국위선양을 한 선수가 있나", 'e스포츠가 스포츠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경기장에서 앉아 휴대폰을 조작해 경기하는 e스포츠 종목 '배틀그라운드 모바일'도 은메달 결정 전까지 같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딴 게 수영, 육상, 펜싱, 양궁이랑 동급인가. 편하게 앉아서 게임을 하다가 이기면 '국위 선양했으니 군 면제'?" 라는 격렬한 반응을 보인 네티즌도 있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경기에서 승부를 펼치고 있다. / 사진=뉴스1
e스포츠계에서도 이런 논란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롤 프로게이머 출신 정노철 e스포츠 해설위원은 지난 4일 YTN 라디오에서 '그냥 게임 잘해서 받는 군 면제가 불공정하다는 시선도 있다'는 질문에 "평균 13~14시간 정도 쉬지 않고 집중하면서 연습하고 있다"며 "노력의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에서 오는 혹독한 훈련 이 모든 것을 다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온 선수들이 받게 되는 혜택인데 불공정하다고 폄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페이커 이상혁도 같은 논란에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달 30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주관 금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몸을 움직여서 활동하는 게 기존의 스포츠 관념인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분께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롤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금메달을 따는 모습이 많은 분께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페이커 이상혁이 30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 사진=뉴스1
정치권에서는 이번 롤 대표팀의 금메달을 계기로 'e스포츠를 스포츠'로 보지 않는 낡은 인식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서 '게임은 질병'이라고 주장해온 일부 진영을 비판하면서 "꼭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게임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주권자의 취미 생활이다. 당구나 골프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있다고 누구도 당구와 골프를 질병 취급하진 않는다"고 했다.e스포츠 산업 지원 방안을 찾겠다는 공언도 이어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 "국내 e스포츠 환경이 열악함에도 거둔 성과이기에, 선수들이 만들어 준 결과에 기뻐함과 함께, 이제 선수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라며 "다양한 체험과 교육을 통한 세대 간의 이해 증진, 게임 인식 개선과 함께, 게임 과몰입을 예방·치유해 올바르고 유익한 게임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