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소주성 맹신이 부른 통계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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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2
소주성 추진 후 소득분배 악화
文 정부는 통계 수치만 탓해
결국 통계 조작으로 이어져
부동산 정책 실패는 인정하면서
소주성엔 아직도 미련 못버려
지금이라도 냉정히 성찰해야
임도원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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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지난달 발표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소주성 맹신’은 지난 정부의 통계 조작 과정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은 ‘소주성이 잘못된 것이냐, 통계 수치가 잘못된 것이냐’는 답이 뻔한 의문에 봉착했을 때 늘 통계 수치를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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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홍 수석의 대학원 후배인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통계를 탓했다. 그는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통계가 나온 직후 청와대에 조사 방식 변경을 건의했다. 몇 달 후 취임 1년여 만에 경질된 황수경 통계청장의 후임으로 전격 발탁됐다. 강 청장은 매달 1000가구씩 새로 뽑아 연간 1만2000가구를 조사하던 방식에서 60대 이상의 비중을 줄인 7200가구를 선정해 이들을 대상으로 매달 조사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 방식이 처음 도입된 2020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에서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소득 하위 20% 가구 소득이 늘어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반면 야당은 기존 방식대로였다면 역대 최악의 소득분배 지표가 나왔을 것으로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재임 시절 “소주성은 세계적으로 족보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소주성은 포스트 케인지언인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의 성장 모형인 임금주도성장론의 한국판이다. 하지만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 등 주류 경제학자는 “임금주도 성장은 경제학적으로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최저임금을 한 번에 300% 이상 올렸다가 경제 위기를 맞은 베네수엘라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설사 족보를 인정한다 해도 임금주도성장론에는 ‘통계를 조작하라’는 내용은 없다.지난 정부 인사들은 아직도 소주성 맹신에 사로잡혀 있다.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지 며칠 되지 않아 SNS에 좌파 성향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정책 평가’ 보고서를 공유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정부에서 비정규직 비율과 임금 격차가 줄고 노동분배율이 대폭 개선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부동산만큼은 할 말이 없게 됐다”던 문 전 대통령은 소주성에 대해서만은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발간한 저서 <부동산과 정치>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성찰 없이는 미래에 반복될지 모를 상황에 올바로 대처할 수 없다”고 했다. 소주성도 마찬가지다. 맹신을 버린 차가운 성찰이 필요하다. ‘소주성이 잘못된 것이냐, 통계 수치가 잘못된 것이냐’는 질문의 답을 수정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