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총 쏘듯 온몸으로 진동…빌딩 맵에선 다리가 '후들'

창간 59주년 기획 '엔드 테크가 온다'

시애틀 '샌드박스VR' 체험
조끼·감지기 착용해 게임 생생
30분에 55달러…비싸지만 인기
한경 기자가 시애틀 도심에 있는 샌드박스VR에서 ‘엠버 스카이 2088’ 콘텐츠를 체험하기 위해 직원 도움으로 조끼를 착용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가상현실에서의 모습. /신정은 기자
2088년 어느 날, 홍콩에 나타난 여전사. 그는 가상현실(VR)에서 로봇이 돼 지구를 침공한 에일리언에 맞서 싸운다. 수백m의 빌딩을 오르내리고, 에일리언을 총으로 저격하는 대담함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선 그저 빈 공간에서 VR 기기를 쓴 평범한 인간이다.

지난 8월 중순께 미국 시애틀 도심에 있는 샌드박스VR을 찾은 기자는 ‘엠버 스카이 2088’ 콘텐츠를 체험했다. 샌드박스VR은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 등에 30개 이상 매장을 연 대표적인 VR 스타트업이다. 현재 10여 개 매장을 추가로 만들고 있다.VR 헤드셋과 조이스틱 등을 활용한 단순한 VR 체험장과 달리 이곳은 온몸에 기기를 장착해 가상현실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앵글(angle)’이란 닉네임의 직원은 검은색 두꺼운 조끼를 기자에게 입혀주고 팔목과 손목에 감지기를 달아줬다. VR 기기를 끼고 헤드셋을 쓰자 주변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아 어쩐지 무서웠다. 현실세계에서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이크로 연결된 이들과만 소통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몸은 로봇으로 바뀌었고, 손에 쥐어진 하얀색의 총은 실제 총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에일리언이 다가오면 온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나서 소름이 끼쳤다. 빌딩을 오가는 느낌은 완벽에 가까웠다. 빌딩 꼭대기에 올라갈 땐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실제 내가 있는 공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체험이 끝난 뒤 알게 됐다.

샌드박스VR의 시애틀 매장에는 4개의 체험관이 있는데 모두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다. 아마존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스콧 터너는 “VR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동료들과 방문했다”며 “실제 다른 공간에 들어간 것처럼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30여 분 체험에 가격은 55달러(약 7만5000원)다.이곳에서는 VR이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젊은이가 이 공간을 아끼고 즐기고 있었다. 수익성도 나쁘지 않다. 샌드박스VR은 지난해 인기 콘텐츠인 ‘데드우드 밸리’로 전 세계에서 23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는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VR 체험 게임을 개발 중이며, 올해 안에 출시할 예정이다.

시애틀=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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