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득권 타파…제2, 제3 로톡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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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스타트업부장“829일 만에 나온 법무부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의 발언에는 말 그대로 시원섭섭함이 묻어났다. 앞서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로앤컴퍼니가 운영하는 법률 플랫폼 ‘로톡’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대한변호사협회(변협)로부터 징계받은 변호사 123명의 징계 취소 결정을 내렸다. 8년7개월을 끌어온 변협과의 싸움에 마침표가 찍힌 데 대해 안도감과 서운함이 교차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변협의 끈질긴 소송과 압박에 로톡은 많은 걸 잃었다. 로톡 플랫폼을 이탈하는 변호사가 늘면서 100억원 이상의 광고 수입이 줄었다. 경영 악화 여파로 결국 올 2월 직원 90명 중 절반을 내보내야만 했다.
정보비대칭 심한 법률시장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스타트업이 기득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첫 사례를 만든 동시에 국내 리걸테크(법률+기술) 성장의 본격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국내 변호사 수는 지난 8월 기준 3만4182명이다. 2013년 8월 1만5905명과 비교하면 10년 새 두 배 훌쩍 넘게 증가했다. 변호사 수의 적정성 논란을 떠나 국내 법률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늘어난 변호사 수와 비례해 서비스 질이 개선되지 않는 데 있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일반인이 주변에서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호사는 많지만 어떤 분야에 전문성을 지녔는지 정보가 없으니 사실상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없는 ‘깜깜이 시장’인 셈이다.공급 측면의 쏠림 현상도 심하다. 포털 광고에만 한 달에 수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붓는 로펌에 밀린 청년 변호사들은 생계를 위협받는다. 불법 브로커나 사무장 로펌의 유혹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청년 변호사일수록 알음알음식 사건 수임보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사건 수임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로톡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의 80%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변호사다.
시대 흐름 거스를 수 없어
시장 정보를 원하는 소비자와 투명한 경쟁을 요구하는 공급자 사이를 파고든 게 바로 리걸테크다. 변호사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홍보하고, 소비자는 필요한 분야의 변호사를 골라 상담할 수 있다. 해당 변호사와 상담한 이용자의 후기까지 살펴볼 수 있다. 리걸테크는 이미 선진국에서 빠르게 성장해 온 산업이다. 전 세계 7000여 개의 리걸테크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고 이 중 1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이 나왔다. 디지털 전환(DX)이 상대적으로 늦은 일본에서조차 리걸테크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다. 로톡이 벤치마킹한 벤고시닷컴은 일본 변호사의 절반가량인 2만여 명이 등록돼 있다.이젠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먼저 찾는 게 당연한 시대다. 법률서비스 시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정보 부족의 기울어진 시장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소비자가 오롯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고착된 퇴행의 낡은 틀을 깨뜨리는 유일한 방법은 파괴적 혁신뿐이다. 혁신이 실종된 생태계는 도태하기 마련이다. 9년 가까이 거대 기득권과 맞서 싸우면서도 끝까지 꺾이지 않았던 로톡의 도전이 유독 빛나고 값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