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육성" 50년 그린벨트 푼 日…정치권, 더는 발목 잡지 말아야

일본이 반도체 부흥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50년 이상 묶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규제를 풀어 전국 농지·임야 부지에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공장을 짓기로 했다. 반도체 기업에 수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세금우대 정책을 펴온 데 이어 부동산 규제까지 푼 것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등이 일본 공장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이처럼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고 한다.

일본은 원래 반도체 강국이었다. 미국이 ‘플라자 합의’ 등을 통해 견제에 나서며 패권을 잃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와 반도체 공급망 재편 등으로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자 한국·대만에 빼앗긴 반도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모습이다. 지정학적 환경도 작용했다. 대만은 중국 리스크가 크고, 한국은 반도체 생산시설 상당수가 중국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기회라고 판단해 과감한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일본 기업들도 공장 신설과 연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8월 도요타·소니 등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합작해 만든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는 지난달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일본이 기술 격차가 큰 한국·대만을 이른 시일 내에 따라잡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 우수한 반도체 인재를 육성·유치하고 견고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K반도체의 기술 우위가 무너지지 않도록 민관이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 최근 삼성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 계획을 재생에너지로 새로 수립하라는 야당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같이 정치적 논리와 지역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도 더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