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시장 '트리플 약세'로 신음

美 고금리 장기화에 '자금 탈출'
장기금리, 두달 만에 두 배로
'버핏 효과' 누렸던 증시 휘청
6월 이후 엔화값 6.8% 떨어져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융 긴축 정책을 예상보다 오래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일본 금융시장이 ‘트리플 약세’에 신음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시장을 이탈해 미국 시장으로 향하면서 일본의 국채, 주식, 통화 가치가 모두 하락하고 있다.

8일 일본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일본 채권시장에서 장기금리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한때 연 0.805%까지 상승했다. 10년2개월 만의 최고치다. 지난 7월 28일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연 0±0.5%에서 사실상 연 1%로 인상했을 당시 연 0.4% 수준이었던 장기금리가 두 달여 만에 두 배로 치솟은 것이다.

美 장기금리 상승에 日 ‘휘청’

일본의 장기금리 급등은 미국 국채 10년 만기와 같은 장기금리가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쿠무라 아타루 SMBC닛코증권 금리전략가는 “일본의 장기금리는 미국의 장기금리 움직임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최근 연 4.8%대로 오르며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Fed가 올해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고(高)금리를 오래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증시를 대표하는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6일 전날보다 0.26% 내린 30,994.67로 거래를 마치며 하루 만에 31,000선을 내줬다. 7월 33,700까지 상승한 닛케이지수는 9월 15일 이후 지금까지 3000포인트가량 하락했다.닛케이225지수가 부진한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시장을 빠져나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4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다고 밝힌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10년 만에 가장 적극적으로 일본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 6월 중순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12주 연속 일본 주식을 6조1757억엔(약 57조원)어치 순매수했다. ‘아베노믹스 장세’로 불리는 2013년 증시 호황기에 외국인이 18주 연속 일본 주식을 순매수한 이후 가장 오랜 매수 행진이었다.

하지만 9월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을 4주 연속 순매도했고, 닛케이225지수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올 들어 급등한 일본 증시가 고평가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미국 시장으로 움직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달러 독주 속 두드러지는 엔저(低)

채권과 주식에 이어 엔화도 기록적인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들어 달러당 엔화 가치는 반복해서 150엔을 밑돌고 있다. 11개월 만의 최저치다. 일본은행이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3일 오후 150엔 선이 무너졌던 엔화 가치가 갑자기 148엔까지 급등했기 때문이다.달러가 독주하면서 주요국 통화는 모두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엔화 가치 하락은 특히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6월 1일 이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6.8% 하락했다. 호주달러(-3.8%), 영국 파운드(-3.1%), 유로(-2.4%)에 비해 하락 폭이 두 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미국 달러화 가치가 오르는 동시에 엔화 가치 자체도 떨어지면서 엔저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분석한다. 무역적자가 구조화하는 등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약화했다는 것이다.

이시카와 마사히로 미쓰이스미토모DS애셋매니지먼트 수석시장전략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명확하게 둔화하기 전까지는 엔화 가치가 계속해서 150엔 안팎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