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선…"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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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갈라 상영작“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말하지 못해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는 게 들통날 테니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영화 ‘괴물’(2023)의 후반부. 초등학생 미나토가 교장 선생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그의 담임은 미나토에게 폭언과 구타를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매장을 당한 상태다. 전부 오해에서 비롯한 일이다. 무엇이 미나토가 진실을 말하는 것을 가로막았을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괴물’은 126분에 걸쳐 학교 폭력과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문제를 깊게 파고든다. 어느 한쪽에서 다른 편을 매도하기보다는 개인과 가족, 사회의 여러 측면을 고루 조망하며 사건의 실재를 비춘다.
현대 일본 영화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사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 등에서 사회 문제, 그 속에 있는 개인의 고뇌를 조명해왔다.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은 ‘괴물’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의 영광을 안았다.영화는 서로 다른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처음은 미나토 어머니의 시선이다. 그는 아들 몸 곳곳에 괴롭힘의 흔적을 발견한다. 주변의 소문과 정황상 담임 선생이 벌인 일처럼 보였다. 형식적인 사과만 반복하는 학교와 담임은 그의 눈에 ‘괴물’로 보일 뿐이다.
이어지는 담임의 시점은 사건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준다. 문제를 조용히 덮으려는 학교로 인해 학부모와 소통이 차단된 게 시작이었다. 그가 보기엔 오히려 미나토가 동급생 호시카와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급기야 언론에까지 보도되며 그의 삶은 망가진다.
학부모와 담임이 끝내 알지 못한 마지막 사연이 있었다. 당사자인 학생들의 시선이다. 어른 중 누구도 미나토와 친구 호시카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남들과 성적 정체성이 다른 자신들을 괴물로 보는 사회의 편견이 오해를 키웠다.다시 미나토와 교장의 문답. 교장은 이렇게 답한다.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고 하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하는 거야.” 소년의 시점에서 학생 인권과 교권, 동성애까지 풀어낸 ‘괴물’.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엔딩 장면은 이들의 사연을 더 안타깝게 한다. 학폭 사건이 연일 뉴스가 되는 시점이어서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부산=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