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존 재정·통화정책 틀로 위기관리 가능한가

끈적한 고물가에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불안감이 겹친 가운데 이번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가 극도의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부담이 적잖은 상황에서 중동발 전면전 관측까지 나오는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와 과다 부채로 ‘10월 위기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총체적 비상으로 간주하고 재정·통화·금융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본격적 위기관리 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우선은 금리다. 인플레이션과 원화 약세가 여전하고 미국 고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지는 상황인데도 한국은행은 지난 5개월 연속 기준금리(연 3.5%)를 동결했다. 민간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 상승과 소비 여력 위축 등을 감안한 것이지만 가계와 기업 부채의 조정이 지연되면서 체질 개선과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시장에 금리 동결이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전달되면서 오히려 부동산 담보대출이 늘어나는 양상까지 벌어졌다.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상환유예된 80조원 상당의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부실화 문제도 당국이 좌고우면하는 사이에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격차가 벌어지면서 통화정책의 신뢰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도 마냥 긴축 기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다. 정부는 남은 4분기 상저하고(상반기 저조, 하반기 회복)에 이어 내년 경기 상승을 예상해 내년도 예산안 총지출 증가액을 2.8% 수준으로 묶었다. 하지만 장기 불황 가능성이 커지면서 통화정책과 엇박자를 내지 않는 선에서 재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수치에 집착하기보다 경기 방어를 위해 적기 적소에 재정이 역할을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어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각별한 경계심으로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정책 재조정 의지는 없어 보인다. 모든 방면에서 예상을 벗어난 대내외 환경 급변에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정책 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