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유리조각에 온기를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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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작화랑 고성희 조각전유리의 가장 큰 특징은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유리 조각이 ‘영롱함’을 생명처럼 여긴다. 하지만 고성희 작가(남서울대 교수)의 작품은 다르다. 투명한 부분보다 불투명하고 거친 부분이 더 많다.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유리 조각전은 그의 독특한 ‘기억연습’ 시리즈 2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표면 거칠고 불투명한 작품들
"차가운 유리에 감성 입혔다"
고성희 유리 작품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이유는 유리를 다듬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작가의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고 작가는 한국의 유리 조각 분야를 개척한 ‘1세대 유리조각가’로 불린다. 홍익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를 거쳐 체코와 독일 등의 여러 공방을 돌며 선진 유리 조각 기술을 배워왔다. 1990년대 중반 귀국한 뒤에는 부족한 여건 속에서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며 유리 조각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후학을 양성했다.불투명한 유리 조각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고 작가는 “차갑기만 한 유리에 감성과 감흥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유리 조각을 만들 때보다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먼저 납 활자와 흙, 오브제 등을 이용해 실리콘으로 틀을 뜬 뒤 석고 틀을 다시 덮고, 700도 이상으로 유리를 가공한 뒤 연마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투명함과 불투명함, 빛의 반사와 굴절 등을 세밀하게 조정해 삶과 기억을 표현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고 작가는 그간 30회 이상의 국내외 개인전과 4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대전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기관에 소장돼 있으며, 유엔 지정 ‘2022 세계 유리의 해’ 한국위원, 홍익조각회 회장, 천안문화재단 이사, 성암현대유리역사박물관 관장, 남서울국제유리조형페스티벌 총괄 등을 맡았다. 이번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