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외로울 때 도쿄의 호텔 라운지바에 가면 생기는 일

[arte]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어떤 영화들은 그 영화가 담고 있는 공기를 느끼기 위해 다시 찾게 되는 영화가 있다. 내게는 늦은 밤, 쓸쓸함을 느낄 때, 낯선 누군가와 공감가는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이 영화가 생각난다.

국내 포스터를 보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타이틀의 물음표에 하트 모양을 붙여가며 남녀 배우의 투 샷을 합성해 해두었다. (미국의 포스터에서는 전부 원샷으로 이루어진 독립된 장면이고, 이 작품의 원제 <Lost in Translation>은 ‘통역이나 번역 과정에서 말의 의미가 누락되었다’는 뜻이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뉘앙스를 주고 싶게 만든 마케팅 팀의 고충이 느껴진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포스터
이 영화의 무대는 세계적인 메가시티, 도쿄의 어느 호텔이다.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벗어날 겸 광고를 찍으러 온 배우 밥 해리스(빌 머레이).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온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렌 요한슨), 낯선 이국의 땅에서 외로운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 선을 넘는 그런 둘의 러브 스토리인 걸까? 그렇지 않다. 이 영화엔 두근두근 설레는 감정도, 격정적 뜨거움도 없다.

영화가 시작되면 밥과 샬롯이 각각 고층의 호텔 방에 혼자 있는 장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장면이 반복되어 나온다. 두 사람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잘 느껴진다. 연령대가 다른 두 사람은 호텔의 바에서 처음 만나는데, 같은 언어를 쓰고 잠이 통 안 온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샬롯은 갓 졸업을 했고, 갓 결혼을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샬롯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낀다. 미래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서 불안하다. 늙고 한물간 배우인 밥은 가족 생활이 예전 같지 않다.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자조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외로움에 교감한다. 그러나 섹슈얼한 사이로 넘어가지 않는다. 외국에 떠나와 이방인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설레는 만남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으로 이어지는 만남이 아니어도 낯선 사람과 오래 기억에 남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그런 대화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된다. 창밖에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조도가 낮은 호텔의 바에서 낯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적적한 밤, 이 영화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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