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에도 유가 폭등 없는 이유

중동 역학변화로 확전 가능성 적고 이란 생산 비중 적어
미국 SPR 유가폭등 제어 가능한 물량 보유
사진=AFP
과거 중동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 전통적으로 유가가 바로 폭등했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후 처음으로 열린 9일(현지시간) 시장에서 유가는 한 때 5% 가까이 급등했으나 곧 상승폭이 줄었고 오늘은 한 때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중동 국가간 역학이 크게 변했다. 미국의 전략비축량(SPR)은 과거보다 절대 분량이 많다. 따라서 중동 분쟁과 유가의 움직임도 50년전 1차 오일쇼크 때와는 전혀 다르게 움직일 것으로 다수의 외신들이 전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 시장에서 무력충돌 후 거래 이틀째를 맞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과 벤치마크 브렌트유 가격은 전날보다 안정돼 동부표준시로 오전 6시 전후 거래에서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배런스 칼럼에 따르면 에너지 시장의 상황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 발생한 50년전 1차 오일쇼크때와 많이 다르다.

그 때는 여러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항의하여 석유금수조치에 들어갔다. 유가는 이후 3개월사이 4배가 올랐고 분쟁이 해결된 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번 유혈 사태도 과거의 위기만큼 충격적이며 더 많은 폭력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ING의 분석가 워렌 패터슨은 “최근 상황이 석유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비슷한 의견을 낸 분석가들이 많다.

석유 거래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초기를 제외하고는 지난 18개월 동안 지정학적 이유로 가격 상승이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석유의 공급과 수요간 격차가 일부 분석가들이 호들갑을 부린 것에 비해 크게 적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피에르 안두랑은 X에 쓴 글에서 "투자자들은 앞으로 며칠간 유가가 크게 급등할 것으로 예상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중동 내부의 역학 변화

클락타워 그룹의 수석전략가인 마르코 파픽의 분석에 주의를 기울여볼만 하다.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이스라엘과 인근 아랍 국가와의 갈등은 21세기 들어 유가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대하는 방식이 더 이상 하나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지역에 진정한 동맹국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고립돼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경제 발전과 장기적인 이익 극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나라다.

이집트는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으며 시리아는 내전으로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란은 여전히 반이스라엘 성향을 띠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을 위해 이스라엘과 미국의 보복까지 감수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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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략적 석유 비축량(SPR)

미국의 전략적 석유 비축량(SPR) 역시 큰 변수다.

미국은 세계의 지배적 생산자이며 본질적으로 모든 국내 수요를 공급할 수 있다. 미국의 전략적 석유 비축량은 러시아 침공 이전보다 상당히 낮지만 필요한 경우 유가 급등을 제어할 만큼 충분한 물량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글로벌 상품 전략 책임자인 벤자민 호프는 “SPR은 여전히 법정 최저치와 IEA가 권장하는 90일 순 수입 한도를 훨씬 초과한다”고 밝혔다.

에너지 시장의 계산은 하마스의 공격에 이란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에 따라 여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공격에 대한 이란의 지원 규모는 아직 불분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관리들이 이번 공격 계획에 이란이 직접 관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지만 이란은 이를 부인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국무부 관리들도 이란이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란 석유, 세계시장 공급량의 3%

만약 이란이 개입했다는 더 많은 증거가 공개되고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직접 보복을 하면 전쟁이 확대되면서 에너지 시장에 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란의 생산량과 수출량 자체가 에너지 시장을 크게 흔들만한 분량은 아니다.

이란은 현재 하루 약 3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데 이는 세계 시장 공급량의 약 3%에 해당한다. 올해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다소 완화하면서 석유 생산과 수출이 증가해서 이렇다. 이란의 생산량은 1월 이후 하루 약 60만 배럴 증가했다.

그러나 미국이 보다 공격적으로 제재를 해서 이란이 공급하는 60만 배럴이 모두 시장에서 사라진다 해도 글로벌 석유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한 나라만 해도 감산을 중단하면 다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물량이 하루 200만 배럴 이상에 달한다.

에너지 거래자들이 이스라엘 분쟁을 면밀히 관찰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그 영향이 석유 시장을 크게 흔들지는 않을 수 있다. 파픽은 “이미 거시적 맥락에서 충분히 강세를 보인 유가에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 영향이 의미 있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