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날아가버린 중동 평화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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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 국제부장올 들어 미국과 중국이 요란하게 패권 경쟁을 벌이는 동안 중동에서는 ‘조용한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였다. 세 사람 모두 중동 평화 실현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하지만 지난 7일 단행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반인륜적 테러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모든 것을 바꿔놓은 하마스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시 대외 문제에서만큼은 강점을 보일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른바 ‘미치광이’ 외교로 망쳐놓은 대외관계를 정상화할 적임자로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나 중동 문제에서만큼은 처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수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급속하게 약화하기 시작했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아온 빈 살만 왕세자를 공개 비난함으로써 중동 지역 최대 친미 국가였던 사우디와의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미국의 중동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국교 정상화, 이른바 ‘중동 데탕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국교 정상화는 중동 지역 질서를 바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시 주석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틈을 발 빠르게 파고들었다. 올해 초 중동의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의 외무장관이 중국 베이징에서 화해의 악수를 하도록 중재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월엔 중국을 방문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에게 ‘아랍 평화 이니셔티브’를 제시하기도 했다.
사우디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이라는 야심 찬 국가 개혁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미·중 패권 경쟁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는 시 주석의 손을 잡음으로써 인도·태평양에 몰입해 있던 바이든 대통령의 관심을 다시 중동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결국 미국은 “우리는 중동을 떠나지 않았다”고 선언했고, 사우디와 한·미 동맹 수준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빈 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 이란뿐 아니라 주변 모든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제로 프라블럼(zero problem)’ 외교도 펼치고 있다. 비전 2030을 통해 사우디를 중동의 허브 국가로 만들려면 주변 국가와의 평화적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