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접고 사무실 물색"…조직 개편 앞두고 경찰 뒤숭숭

강력범죄수사대, 기동대로 재편
업무분담·사무공간 꼬여 진통
마약·조폭 수사 등 공백 우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한 형사는 지난주 수사 중인 사건을 접어두고 서울 곳곳을 누볐다. 내년 상반기 신설되는 형사기동대(가칭)가 사용할 사무실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동네 치안센터부터 일선 경찰서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실패했다”며 “집주인은 생각이 없는데 세입자가 무턱대고 집을 보러 간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시·도 경찰청의 강력범죄수사대의 기능을 전면 재조정하는 내용의 경찰 조직 개편을 앞두고 경찰이 큰 혼선을 빚고 있다. 업무 축소·분담부터 사무 공간 마련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강력범죄수사대를 개편하고 베테랑 경찰들을 ‘묻지마 범죄’ 현장에 투입하는 조치를 두고는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조직폭력과 마약 수사 등에 구멍이 생길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11일 경찰에 따르면 시·도 경찰청 광역수사단 산하 강력범죄수사대가 형사기동대로 개편된다. 서울 신림동 등 전국적으로 흉기 난동이 잇따르자 현장 대응을 강화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이다. 당장 서울 강력범죄수사대는 일선 경찰서 인력과 합쳐져 다섯 개 대로 재편된다.

강력범죄수사대 내부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우선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온 조폭 사건이나 마약범죄 수사에 공백이 생길 것이란 불만이다. 이들 수사는 수년간 다져진 인맥과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최근엔 암호화폐 범죄까지 손을 대는 조폭 사건이 늘면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공공범죄수사대 등 다른 부서가 기능을 물려받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지휘부는 형사기동대가 현장 순찰과 사건 수사를 동시에 해결해주길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묻지마 칼부림’ 등이 순찰로 예방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건폭’(건설노조의 폭력행위) 또는 마약과 전쟁을 선포할 때만 하더라도 강력범죄수사대 멤버들이 큰 책임감을 느꼈는데 불과 1년 만에 기조가 바뀌었다”고 한탄했다.행정적인 절차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사무실조차 ‘알아서 마련하라’는 식이다. 한 강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일선 경찰서에선 ‘우리가 쓰기도 부족하다’고 난색을 보인다”며 “지구대나 파출소, 치안센터는 40여 명을 수용할 공간이 되지 않아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일각에선 일선 경찰서가 담당하던 보이스피싱 사건을 형사기동대에 넘겨주면서 사무실을 제공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 내부에선 형사기동대가 사실상 ‘보이스피싱 수사대’로 전락할 것이란 푸념도 나오고 있다. 경찰청은 “형사기동대는 기존 조직을 확대 재편하는 개념”이라며 “그간 담당했던 강력범죄수사대 업무 범위를 확장해 일선 경찰서 강력사건 수사도 지원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