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이번엔 중국산 철강 보조금에 칼 뺐다

전기차 이어 불공정 조사 착수

경쟁 저해 판단땐 관세 부과 검토
美와의 철강·알루미늄 무역 갈등
대중 압박 동참으로 해결 시도
유럽연합(EU)이 중국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에 대해 불공정 보조금 혜택 여부를 조사한다. 지난달 중국산 전기자동차를 겨냥해 반(反)보조금 조사를 예고한 데 이어 미국 주도의 대(對)중국 압박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이와 더불어 미국과 EU는 양측 간 철강 무역 분쟁의 칼 끝을 중국으로 돌리는 방안을 놓고 막판 조율 작업을 벌이고 있다.

○美의 對中 견제 동참하는 EU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오는 2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철강 분야 반보조금 조사’ 계획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EU로 수입되는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이 중국 당국의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받는지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통상 반보조금 조사는 최장 1년가량 소요된다.

EU 집행위의 직권 조사 결과 중국산 철강이 받은 보조금 규모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그에 따른 상계 관세를 부과한다. FT는 “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산 저가 철강과의 경쟁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전선에 EU가 동참하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FT에 “미국 측이 ‘과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EU산 철강에 부과한 관세를 되살리지 않는 대신 함께 중국 철강 기업을 겨냥하자’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2018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한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면서 양측 간 무역 분쟁을 촉발했다. EU가 버번, 할리데이비드슨 오토바이 등 미국 제품에 관세 폭탄으로 맞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덤핑 관세 실효성은 미지수

바이든 행정부 집권 첫해인 2021년 양측은 해당 조치를 중단했다. 대신 철강산업의 탈탄소화를 명분으로 한 ‘지속 가능한 글로벌 철강 및 알루미늄 협정(GSSA)’을 논의해 왔다. 당시 협상 시한을 2023년 10월 31일로 정했는데, 시한이 만료되면 미국 측의 고율 관세와 EU의 보복 조치가 자동으로 재개된다.

하지만 20일 열리는 미·EU 정상회담에서 EU의 철강 분야 반보조금 조사 계획과 더불어 GSSA 합의안도 전격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를 통해 EU와 미국은 상호 간 철강 무역 분쟁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동시에 보조금 등 반시장적 관행을 토대로 과잉 생산되는 중국산 철강에 대해 공동 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FT는 “2년여에 걸친 GSSA 실무 협상 과정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위반 가능성 등을 두고 양측 간 입장 차이가 계속됐지만, 협상 시한이 임박한 만큼 최소한의 정치적 합의 타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GSSA 협정은 중국산 철강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나 새로운 관세 체계 도입 등으로 이뤄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EU와의 GSSA 타결을 계기로 영국 일본 등 다른 국가도 해당 협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는 구상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다만 EU가 이미 중국산 철강 10여 개 품목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얼마나 실효적일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U 측 관계자는 “반보조금 조사를 통해 중국의 철강 분야 보조금이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WTO 규칙에 부합하는 선에서 새로운 형태의 관세를 매길 방침”이라고 밝혔다. EU는 중국산 전기차를 겨냥한 반보조금 조사를 이달 4일 시작했고, 중국산 풍력 터빈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할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리안/김인엽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