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플립 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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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권 신한카드 사장16일간의 뜨거웠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특히 추석 연휴와 대회 기간이 겹치면서 여러 경기를 편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치열한 승부 끝에 울고 웃는 명승부의 짜릿한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번 대회에서 인상 깊었던 종목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수영이다. 수영 덕분에 우리나라가 기초 종목에서 취약하다는 인식이 깨졌다. 특히 박태환이라는 슈퍼스타 한 명에 의존한 과거와 달리 황선우, 김우민 등 여러 선수가 활약했고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금메달 6개를 포함해 총 22개 메달을 땄는데 아시안게임 기준 최다일 뿐 아니라 최초로 일본을 앞섰다고 하니 무척 기분 좋은 결과다.수영은 시원한 장면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종목이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수영은 물에서 하는 달리기로 인식돼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큰 키의 선수들이 긴 팔다리를 흔드는 출발 장면부터 여러 선수가 하얀 물살을 가르는 모습은 늘 감탄을 자아낸다. 많은 장면 중에서도 다리로 벽을 힘차게 차고 도는 턴을 유난히 좋아한다. 전문용어로 플립 턴(flip turn)이라고 부른다. 이번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보여준 황선우 선수의 세 번의 플립 턴 장면은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플립 턴은 물속에서 앞으로 공중제비 돌듯이 돌며 벽면을 발로 차고 나가는 턴을 말하는데,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플립 턴이 1930년대에서야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당시 선수들은 모두 손으로 벽을 짚고 턴을 했는데, 한 선수가 플립 턴을 통해 우승한 이후로는 모든 선수가 손이 아니라 다리와 발을 사용해 턴을 하게 됐다. 한 바퀴 몸을 돌려 발로 벽을 터치하면 엄청난 가속을 얻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00야드 배영 경기에서 ‘마의 1분’ 벽이 처음 깨진 것도 플립 턴 기술이 나온 이후다. 남들과 똑같은 방법과 기술을 갖고 경쟁하려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땀 흘리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플립 턴과 같은 발상의 전환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고, 이기는 게임(winning game)을 만든다.
아이폰을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도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간단한 문장 하나로 새로운 장르 창조를 향한 뜨거운 열망과 신념을 표현한 바 있다. 그는 평소 차별화(difference), 창조(creation), 혁신(innovation), 개혁(reform) 등의 단어를 애용했다고 한다. 문득 머릿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복잡한 일이 떠오른다. 예전부터 해오던 익숙한 방법으로 생각한 건 아닌지, 그냥 남들보다 열심히 하려고 행동하지 않았는지 한번 되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