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부총리, 원전 재도입 주장 "내년 시작하면 2032년 가동 가능"

"고향인 밀라노에 첫 원자로 건설 원해…국민투표로 결정하자"
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로 꼽히는 이탈리아에서 원전을 다시 도입하자는 주장이 정부 내 최고위급 인사의 입에서 나왔다.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내년에 시작하면 2032년에 원자력 발전소의 첫 스위치를 켤 수 있다"며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북부 도시 밀라노를 주요 정치 기반으로 삼는 그는 "밀라노 사람으로서 첫 원전은 밀라노에 건설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살비니 부총리가 원전 재도입을 주장한 배경에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이탈리아가 겪은 에너지 수급 불안 문제가 깔려 있다. 이탈리아는 주요 7개국(G7) 중 원전을 전혀 가동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전체 전력 중 45.6%를 가스에 의존해 생산해왔는데, 지난해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에너지 수입 비용은 1천억유로(약 142조원)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시민들은 치솟는 에너지 비용을 견디지 못해 전기요금 고지서를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따라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원전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커졌다.

살비니 부총리가 원전 재도입 논쟁에 불을 붙임에 따라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게 벌어질 전망이다. 이탈리아는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을 보유한 국가였으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자 원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다.

이탈리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다음 해인 1987년 국민투표를 거쳐 탈원전을 결정했다.

당시 운영되던 원전 4기는 즉각 가동이 중단됐고,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로도 종종 언급된다.

2011년 6월에 다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재개하려던 원자력 발전 계획에 무려 94.1%가 반대표를 던졌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신규 원전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49∼55% 정도 나오고 있다.

과거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던 현재의 젊은 층은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원전의 파괴적인 위험성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라 원전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탈리아 정부도 지난해 에너지 수급난을 겪으면서 에너지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지속 가능한 원자력을 위한 국가 플랫폼'을 발족하고 원자력 에너지 사용으로 돌아갈 수 있는 로드맵을 7개월 이내에 발표하기로 했다.

원전 재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살비니 부총리는 탈원전 정책 폐지를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살비니 부총리가 원전 복귀에 앞장선 배경으로 달라진 여론,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 외에도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본다.

살비니 부총리는 본토와 시칠리아섬을 잇는 세계 최장 현수교인 메시나 대교 건설을 추진했으나 이 프로젝트는 자금 부족으로 인해 좌초 위기에 빠졌다.

내년 정부 예산에서 메시나 대교 관련 예산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는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또 다른 목표인 원전 건설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탈원전 이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는 메시나 대교보다는 저렴한 목표가 될 것"이라며 "다만 밀라노 주민들이 집 근처에 원전이 들어서는 것을 환영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