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신뢰도 114위, 정부는 110위의 나라… 타개책이 있나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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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동체에서 신뢰는 너무나 중요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고, 사회 구성원들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이 발표한 ‘2023 세계 번영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의 신뢰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커뮤니케이션 전략가 겸 저널리스트 저자
서로 간 신뢰 산산조작 난 이유 냉정하게 분석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기관 신뢰도는 조사 대상 167개국 중 100위였다. 정부 111위, 정치인 114위, 사법 시스템 155위, 군 132위 등 대다수 기관의 신뢰도가 하위권에 머물렀다. 굳이 해외에서 발표한 신뢰도 수준을 언급하지 않아도,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신뢰도 역시 낙제점이다. 정부의 발표, 의회의 약속, 검찰의 수사, 법원의 판결, 언론의 기사, 여론조사, 전문가의 조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신뢰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지난 세기 신뢰의 원천이었던 조직과 기관이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라는 중대한 도전에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초 독일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책 <신뢰의 위기(Die große Vertrauenskrise)>는 현대사회가 어쩌다 서로 믿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진단하며 그 해법을 모색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략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샤사 로보(Sascha Lobo)는 현대 민주사회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이 난 이유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과연 지금의 신뢰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있을지에 대해 질문한다. 신뢰 위기의 원인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적인 사회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가까운 이웃과 동료가 목숨을 잃는 광경을 목격했다. 인포데믹은 팬데믹보다 더 무서웠다. 각종 음모론이 활개를 쳤고 많은 사람이 정치뿐만 아니라 언론, 심지어 과학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각종 재난과 자연재해는 인간의 통제 능력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남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첨예화하는 국가 간의 갈등은 불신을 더욱 확대했다.
최근 벌어진 여러 극적인 사건들은 개인적인 관계에까지 스며들었다. 국가나 사회를 향해서뿐 아니라, 이제는 가까운 동료, 친구, 가족 사이에서도 신뢰의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며,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듣는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이론에 따르면, 음모론은 ‘기대와 현실 간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불평등, 불공정, 불만족이 확산할수록 음모론은 더욱 기세를 떨칠 수밖에 없다. 신뢰는 인간 공동체 공존을 위한 기초인데, 그 기초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일컬어 ‘뷰카(VUCA)’라고 부른다.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로, 상대적으로 안정된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매번 상황이 급변하고 변동성과 모호성이 너무 커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책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역사,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과 분야에서 복잡하고 불확실한 사회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지금, 새로운 ‘신뢰의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나침반이 없으면 방향을 잃고, 방향을 잃으면 미래는 없다”라는 저자의 경고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