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명상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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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 동국대 총장미국 뉴욕의 공립 유치원 및 초·중·고교 학생들은 이번 가을부터 하루에 2~5분간 동양의 호흡명상을 배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안해진 정서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뒷받침했다. 우리 초등학생들에게 명상을 체험하게 했더니 우울증과 공격성이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제 명상은 수행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개방돼 있다. 행복지수 낮은 한국병 치유에도 도입해 볼 만하다.
명상의 기본은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 챙김 호흡법’으로 불리는 이 방법은 전통 불교 수행 과정이었다. 오늘날은 수행자뿐만 아니라 의사와 심리 상담사들도 명상법을 도입해 정신건강 치유에 활용하고 있다.명상은 몸의 체험이다. 앉아서 숨을 고르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며, 걷기나 춤을 통해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명상은 언어와 잠시 이별하는 것이다. 인간 고민의 대부분은 언어영역에 속해 있다. 언어를 끊으면 일단 고민의 내용이 사라진다. 옛 선사들은 이런 경지를 ‘이언절려(離言絶慮)’라고 했다. 말과 생각을 버린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멍때리기’가 이와 비슷하다.
언어는 대상을 가리킨다. 가리키는 대상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분별이 생긴다. 분별의 특징은 상대적 개념의 탄생이다. 선과 악, 미와 추, 기쁨과 슬픔 같은 개념들을 발전시킨다. 발전이 다 좋지는 않다. 천사와 악마가, 남자와 여자가 한 몸 안에 뒤엉켜 있는 것처럼 야누스적 운명을 살게 된다. 분별은 동전의 앞면에 지혜를 새기지만 그 뒷면에 갈등을 함께 새긴다. 갈등은 형제인 지혜마저 제압하면서 사회적 비용을 걷잡을 수 없이 부풀린다.
선과 미는 여과지에서 걸러지고 악과 추만 흘러내려 좀비처럼 돌아다닌다. 격렬한 싸움, 예사로 일으키는 갈등,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적대감 조장…. 정치판은 첨예한 예증이다. 정치인들은 말로 전쟁한다. 좌빨, 친일파, 보수꼴통, 학폭을 비롯한 각종 악플 등도 갈등을 증폭시키는 반생명의 언어들이다. 말을 순화하자는 제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쉽다. 이럴 땐 명상이 대안이다.
명상은 언어의 폐해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미래세대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루 5분이지만 꾸준히 하면 도움이 된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습하기보다 중장기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언어의 반대편에 있는지 모른다. 행복은 몸의 체험인 동시에 건강한 사회적 관계다. 개인의 마음이 안정되면 사회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명상의 보금자리를 들여다보라. 파랑새가 낳은 행복의 알이 거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