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으면 뭐하나, 출퇴근은 지옥길"…용인 집주인들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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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부권 신도시·택지지구 늘었는데"한가하고 조용하게 살려고 내려왔다가, 아예 갇혀버린 것 같아요."
용인서울 고속도로, 14년간 그대로…출퇴근 정체 극심
우회도로 개설은 요원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직장을 둔 김모씨. 지난해 신혼집을 용인시 신봉지구에 잡았다가 후회하고 있다. 전셋값도 판교나 분당보다 낮고, 직장과 가까운 자연 친화적인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차량으로 10여km 거리밖에 안돼 출근시간이 길어야 30분가량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출근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상보다 차량정체가 심했기 때문이다.그는 "용인-서울 고속도로만 타면 금방이지만, 출근시간대에 서수지 IC에 진입하기까지 대기 시간이 30분은 족히 걸린다"며 "유연근무제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며 허구헌날 지각으로 찍힐 뻔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일찍 출근하거나 버스를 타고 수지구청으로 가서 신분당선을 타고 출근중이다.
수원, 용인, 성남 등 경기 남부권에서 서울을 연결하는 용인서울고속도로(용서고속도로)의 교통정체에 주민불편이 커지고 있다. 용서고속도로는 2009년 경부고속도로의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대체 도로로 개통됐다. 용인 흥덕에서 서울 헌릉을 연결하는 총 연장 22.9㎞의 고속도로다. 개통당시만 해도 서울까지 30분 이내에 도착한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그럼에도 유료도로라는 점과 주변 주거지가 용인 수지지구 정도여서 '한가한 도로'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달라졌다. 용서고속도로는 경기 남부권 주요 신도시와 택지지구를 연결하는 동맥같은 도로가 됐다. 주거지역을 연결하는 실핏줄같은 도로들이 용서고속도로로 집중되는 형태다. 개통이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주거지역만도 용인 흥덕지구, 광교신도시, 신봉지구, 성남 대장지구, 고등지구, 금토지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등이 추가됐다. 흥덕IC에서 311번 지방도로로 연결되면서 화성시 동탄신도시, 오산까지 연결된다. 기본적인 강남 출퇴근 수요에 판교에 일자리 늘면서 출퇴근 수요는 더 늘어났다. 때문에 출근시간에는 남쪽부터 오산, 동탄, 흥덕, 광교 등의 순으로 출근인파가 몰려들면서 용서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화되고 있다. 되레 판교나 강남과 거리가 가까운 서수지나 서판교에서는 고속도로에 올라타기 조차 버거운 상황이 됐다. 직주근접으로 여겨졌던 주거지에서 출퇴근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지역민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역 부동산에서는 김씨를 비롯한 신봉지구 주민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는 상태다. 신봉동의 A공인중개사는 "동네에 큰 면적의 아파트가 많고 출퇴근이 지옥이다보니, 우스갯소리로 'CEO들이 들어오는 동네'라는 말을 할 정도다"라며 "숲세권이라 할 수 있는 광교산에 초중고가 다 있다보니 아이 키우기는 좋지만, 출퇴근 시간엔 너무 힘든 동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민들은 집값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러한 이유(교통불편·정체)가 있다고 보고 있다"며 "집이 안 팔려서 전셋집으로만 수년째 돌리는 집이 많다"고 귀띔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신봉동 '신봉마을 3단지 동일하이빌' 전용면적 134㎡(약 49평)의 전셋값은 지난달 5억7000만원에 체결됐고, 매매는 지난 8월 7억9700만원에 성사됐다. 매매로 나와있는 매물은 8억원 중반대, 전세매물은 6억원 중반대 정도다. 주변 아파트들의 매매가도 3.3㎡당 1700만~1800만원 정도다. 신봉지구와 2km대에 떨어져 있는 '성복역 롯데캐슬 골드타운'이 3.3㎡당 3500만원대인 점과 비교하면 '반값' 수준이다. 집값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교통문제는 수치로 봐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운영하는 교통량정보제공시스템을 보면 개통 5년 뒤인 2014년 7만4568대였던 일일 교통량은 지난해 9만1427대로 2만대 이상 급증했다. 판교와 강남 등 주요 업무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성격상 교통량 자체가 출퇴근 시간에 집중되는 것을 감안한다며 매일 교통지옥을 겪고 있는 셈이다. 현재 교통량이 가장 많은 광교상현IC~서판교IC 구간(10.4km)의 교통흐름은 아예 거북이 수준이다.
지역민들은 현실적인 대책은 사실상 우회도로의 개설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민선 7기로 당선된 이상일 용인시장은 공약사업으로 용서고속도로를 우회할 수 있는 신봉-고기간 우회도로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자체, 의회 등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들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민간사업자가 제2용서고속도로를 국토교통부에 제안해 2020년 9월 한국개발연구원에 적격성 의뢰를 넣기도 했지만, 아직 발표조차도 없는 상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