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 구조개혁하면 2%대 성장…정치에 달렸다"

IMF·WB 연차총회 모로코 현지간담회…"IMF, 韓재정 좋은 케이스 평가"
'이-팔 전쟁'에 "정치경제학적 중요…통화정책에도 곤혹스러운 팩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2%대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며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모로코 마라케시를 방문 중인 이창용 총재는 12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구구조 트렌드를 보면 2% 정도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화 때문에 점차 더 낮아진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국이 3~4% 성장률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미국도 2% 성장하는데 '일본처럼 0%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소극적인 견해"라며 "노동시장이라든가, 경쟁 촉진, 여성 및 해외 노동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개혁하면서 장기적 목표를 2% 이상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성장 문제는 구조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재정으로 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사안마다 이해당사자가 다른데, 구조개혁을 하면 2%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 선택은 국민과 정치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IMF 아·태국장으로 재임할 때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재정·통화정책보다는 근본적으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설파해왔다.
오는 1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통화정책에 대해선 언급을 삼갔다.

이 총재는 "물가 전망의 베이스라인은 올해 말 3% 초반, 내년 말까지는 목표 수준(2%)에 근접하게 내려갈 것으로 보면서 정책을 하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선 "유가 요인들을 봐야 하는데, 금통위원들 결정에는 곤혹스러운 팩트일 것"이라며 "갑자기 터졌으니 새로운 자료를 다시 봐야 한다.

당연히 이란뿐만 아니라 어려운 문제가 많다"며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이달부터 실거래 테스트에 나서는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에 대해선 "중국이 일찍 시작했지만, 주요 국가에선 우리만큼 내부적으로 연구한 곳이 없다"며 "중국은 알리바바·텐센트 같은 민간업체가 커지다 보니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 도입한 측면이 있지만, 한국처럼 지급결제시스템이 발전된 나라는 CBDC 도입에 따른 이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CBDC를 빨리했다가, 미국과 유럽이 다른 시스템으로 가면 곤란해질 수 있다"며 "스터디와 파일럿 테스트까지 해보고 어떤 시스템으로 갈지는 미국과 유럽을 보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이번 연차총회의 주요 의제로는 ▲ 장기 고금리 ▲ 재정 건전성 ▲ 지정학적 긴장 ▲ 다국가 대상 원조기구(MDB)의 거버넌스 개혁 등 4가지를 꼽았다.

고금리와 관련해선 "미국이 정책금리를 안 올렸음에도 장기금리가 확 오르면서 충분히 긴축효과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일부의 얘기도 있고, 다른 쪽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미국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다"고 상반된 시각을 소개했다.

이어 "환율이나 시장가격 변화를 보면 미국이 한번 더 금리 올리는 가능성에는 시장이 어느 정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재정 건전성에 대해선 "IMF가 한국을 굉장히 좋은 케이스로 본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한국 정부가 다른 선진국과 달리 정치적으로 영향받지 않고 재정건전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는 건 다들 인정한다"며 "동시에 한국의 20~30년 이후를 보면 고령화 문제로 재정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세계적으로 다 인정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성장이니까 돈을 더 풀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단기적인 성장률은 재정을 풀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정학적 요인에 대해선 "갑자기 이스라엘-하마스 얘기가 더해졌는데,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정치·경제학적으로 중동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중요한 이야기"라며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다들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