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분석 "남녀임금 격차는 결국 육아 때문" [책마을]



커리어 그리고 가정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생각의힘
488쪽|2만2000원
Getty Images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엔 ‘기혼 여성 고용 금지’ 제도가 있었다. 기혼 여성은 남편에게 부양받을 수 있으니 미혼 여성, 과부, 남성들에게 일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곧 달라졌다. 노동력이 부족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고용주들은 기혼 여성을 차별했을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2차 세계대전 징집으로 민간인 남성 노동력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었다. 사무직 등 서비스 부문 일자리가 급증한 것도 영향을 줬다. 여성 노동력 수요가 늘어난 것과 함께 남녀 임금 격차도 완만하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2021년 쓴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이렇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배경을 경제적 요인에서 찾는다.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운동을 낮춰보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가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한다는 시각만으로는 많은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국내에도 2021년 출간된 이 책은 골딘의 오랜 연구 결과가 집대성돼 있다. 골딘은 여성 노동력, 소득의 성별 격차 등을 연구한 노동 경제학자다. 하버드대 경제학과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오랫동안 경제학계에서 여성 노동에 대한 연구는 무시돼 왔다. 무엇보다 데이터가 부족했다. 연구를 하고 싶어도 쉽게 연구할 수 없었다. 골딘은 포기하지 않고 과거 기록을 파헤쳤다. 그 결과 지난 100여 년 동안 직업과 가정을 놓고 여성들이 벌였던 고군분투가 큰 그림으로 드러났다. 이 책의 부제가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인 이유다. 골딘의 연구는 1878~1897년 태어난 여성들부터 시작한다. ‘집단1’로 분류한 이 세대는 커리어와 가정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이 시기에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여성들이 있었다. 많은 경우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

1944~1957년 태어난 집단4의 여성들은 ‘커리어, 그다음에 가정’을 추구했다. 커리어를 먼저 다진 뒤 가정은 그다음에 꾸리면 된다는 개념이 이들 세대 사이에서 새로 생겨났다. 각종 전자제품이 집안일을 덜어주었고, 피임약의 등장으로 임신과 출산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집단4는 한 가지를 오산했다. 엄마 세대가 그랬듯 결혼과 출산을 쉬운 일로만 봤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룬다고 생각한 것이 영영 이루어지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어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1958년 이후 등장한 집단5는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추구한다.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 인공수정·난자 냉동 등 의학 발달이 이를 도왔다. 책의 후반부는 왜 요즘에도 남녀 임금 격차가 사라지지 않는지에 집중한다. 미국 기준으로 1970년대 이후 가파르게 좁혀지던 임금 격차는 2005년 이후 개선이 정체에 빠졌다. 일각에선 직종을 이유로 든다. 예컨대 남성은 의사를, 여성은 간호사로 더 많이 일하기 때문에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골딘의 계산에 따르면 이를 교정하더라도 현재의 소득 격차 중 3분의 1 정도밖에 없애지 못했다.

골딘이 지목하는 원인은 ‘탐욕스러운 일자리’다. 많은 돈을 주지만 장시간 일해야 하고, 밤 10시에 걸려 오는 업무 전화나 이메일에도 즉각 응답해야 하는 일자리를 뜻한다. 변호사, 의사, 컨설턴트, 경영자 등을 생각하면 쉽다. 골딘은 동일 노동에 대한 남녀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경영학 석사(MBA)를 딴 여성의 첫 해 소득은 같은 조건을 가진 남성의 95%였다. 13년 뒤에는 남성의 64%밖에 받지 못했다. 자녀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도 있지만, 주당 노동 시간을 줄였기 때문이었다. 부부가 모두 장시간 일하거나, 둘 다 여유가 많은 일자리로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를 가진 부부의 입장에서 최적은 아니었다. 그들은 한 명은 시간 여유가 많은 일자리를, 한 명은 일을 많이 하더라도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골랐다. 그리고 대체로 시간 유연성이 높은 일자리를 고른 건 여성이었다.
사회적으로 보면 최적은 아니다. 남성은 가족과의 시간을 버려야 하고, 여성은 커리어를 버려야 한다. 골딘은 이를 “마지막으로 남은 성별 격차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책에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줄일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여성이 많이 지고 있는 돌봄의 부담을 어떻게 더 경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