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다발 보여주니... "힘들어도 성과 안나눈다. 혼자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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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소연의 탐나는 책“좋은 경험 했다고 치자”의 금전적인 한도는 어디까지일까?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주식이 고꾸라졌다: -100만원. / 최신형 노트북을 도난당했다: -200만원. / 월세 보증금을 떼였다: -1000만 원. / 전세 보증금을 떼였다: -5000만 원. 누구는 떠나버린 100만 원이 속은 쓰리지만 수업료라 치워버릴 수 있겠지만,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학생에겐 트라우마로 남을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리스크 감수성은 다르다.
『신뢰의 법칙』, 데이비드 데스테노 지음, 박세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8
‘아프니까 청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들 하는데, 어느 정도 실패해도 될까? 글을 잘 쓰는 한 후배는 내 우문에 이렇게 답했다.
“부모들이 바라는 건, 배낭여행 갔다가 소매치기 당해서 바게트 빵만 씹어 먹었다는 정도의 고생 아닐까요? 실패해도 되는 건 자본의 리필이 되는 금수저의 특권이니까요.”금수저는 꿈을 좇을 수 있다. 지원 받을 부모의 자본이 있으니까. 이른바 무일푼 하층은 잃을 게 없으니 달려가야 한다. 그들 중에는 열정과 멘탈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의 열혈 독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 중간층의 자녀는 어느 정도나 감내할 수 있을까? 잘돼야 부모의 삶을 ‘복붙’하고, 못 되면 그 이하로 굴러 떨어질 두려움에 떨고 있다. 모험이 사치재란 말이 과장이길 바란다.인스타그램 밖의 청년들
입시를 치른(정확히 말하면 옆에서 ‘불평 수발’을 한) 부모는 초등학생 부모와 자녀 얘기로 말 섞기가 어렵다. 한쪽은 ‘인서울’ 대학이 실은 서울대였다고 깨달은 사람들이다. 거기에 한 친구가 물색없이 “우리 애한텐 연고대 아니면 학교가 아니야”라고 말하면 갑자기 대화는 중단된다. SNS에 전시할 일상이 없는 ‘SNS 세대’도 강제 침묵한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도 한때 사업으로 잘나가던 집안이 한순간에 폭삭 무너졌다는 개인사가 많다. 그게 진실에 가깝다. 성공이 대접받는 건 드물기 때문이다. 저성장, 낮은 취업률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대다수 청년들은 집안 형편이 그저 그렇고, 내세울 만한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적당한 회사에 취업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할 뿐이다.출간 준비 중인 책 <전세 지옥>의 30대 저자는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기숙사에서 탈출하려고 고르고 골라서 전세 빌라를 마련했다가 하필이면 전세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떠도는 얘기로 한국이 금융사기 세계 1위라고 하던데, 이렇게 된 이유를 일본 저자가 쓴 중국 책에서 힌트를 얻어 본다.
중국에서는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며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누가 공격해올지 모른다. 또한 늘 결과를 추구하며 과정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방심할 틈도 없는 사회가 형성되었고 안타깝게도 속인 사람을 혼내기보다 속은 사람을 비웃는 풍조가 있다.
- <요즘 중국>(곤도 다이스케 지음) 중에서많이 가질수록 혼자서 간다사업과 사기가 정말 한 끗 차이인가? 전세 제도가 한국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서민을 위한 시혜가 맞는가? 정부에서 관리하는 등기부등본을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사적 자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적인 제도는 어디까지 뒷받침 되어야 할까?
‘신뢰’는 모르는 사람을 얼마나 믿을지의 문제다. 부자들이 거짓말을 더 잘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혼자 행동할 수 있는 자원이 많을수록 이기적인 선택에 마음이 더 쏠린다고 한다. 신뢰는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다. 이 연구를 소개한 <신뢰의 법칙>은 ‘신뢰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벌이는 일종의 도박 게임’이라는 흥미로운 전제로 다양한 사회 실험 결과를 담아냈다. 저자는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데스테노이다.피실험자들이 까다로운 과제를 다른 사람과 함께 할지 아니면 혼자서 처리할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힘든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러나 돈다발의 이미지를 보면서 돈의 존재를 떠올렸던 사람들은 혼자 처리하는 방식을 훨씬 많이 선택했다. 그들은 성과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고, 자신의 성공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 하지도 않았다.
- <신뢰의 법칙> 중에서
삶의 전환 국면이 모험이 되었을 때
삶이 만만치 않은데 타인의 신뢰를 기대할 수 없는 사회라면, 게임처럼 리셋도 할 수 없으니 잠수를 타게 된다. 게임에 나서지 않으면 잃을 건 없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는, 인류 이래 디폴트였던 이 전통적인 행위들이 밀레니얼 세대의 삶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배가시키는가. 금리가 오르면 전설적인 투자자도 투자를 쉰다. 앞서 <전세 지옥> 청년이 날린 보증금은 5800만 원이었다. 누군가에겐 어정쩡한 금액일 테지만, 어깨가 처진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겠다는 꿈 많은 청년에게 그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회 초년생은 경험이 적다. 우리 사회의 제도는 초심자나 약자에겐 아직 그렇게 친절하진 않다. 앞으로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한다는 ‘핵개인’들은 주변 ‘꼰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을 점점 기피할 것이다. 이런 세태 속에 한 번 망하면 요즘 말로 “나락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들 몸을 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