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여 안보인 중앙선…미끄러져 넘어가 사고 나면 유죄일까

내리막길서 반대편 차량 보고 급제동했으나 미끄러져 들이받아
재판부 "부득이한 사유로 침범했다 볼 수 없어"…벌금 100만원


직장인 안모(39)씨는 지난해 2월1일 오전 7시 55분께 승용차를 운전하며 경북 봉화군 31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밤사이 내린 눈이 쌓인 탓에 중앙선은 잘 보이지 않았고 도로는 미끄러웠다.

오른쪽으로 굽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그는 반대 차선에서 올라오는 15톤(t)짜리 덤프트럭 제설 차량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그러나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은 중앙선을 넘어 제설차량 앞에 부착된 제설장비 우측 부분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제설 차량을 운전하던 하모(27)씨는 목을 삐끗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고 안씨는 2023년 4월 중앙선을 침범해 교통사고를 낸 혐의로 법정에 섰다.

안씨는 재판에서 사고 당시 중앙선이 보이지 않아 중앙선 침범의 고의가 없었으며 중앙선 침범과 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12단독 허명산 부장판사도 눈이 쌓여 육안으로 중앙선을 식별하기 어려웠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안씨의 중앙선 침범에 '부득이한 사유'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진행차로에 나타난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다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겨를이 없었다거나 자기 차로를 지켜 차량을 운행하려 했으나 운전자가 지배할 수 없는 외부적 여건으로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침범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허 부장판사는 "사고 당시 내린 눈으로 중앙선 식별이 어렵긴 했으나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진행하던 피고인으로서는 속도를 줄여 서행하고 차로를 준수해 안전하게 운전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60㎞였으나 사고 당시처럼 눈이 쌓인 상황에서는 감속 운행했어야 했다고도 지적했다.

당시 안씨가 평균 50.9∼55㎞로 운전하며 과속한 탓에 눈길에 미끄러졌고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비가 내려 길이 젖어있거나 눈이 2㎝ 미만으로 쌓인 경우 최고속도를 20%를 줄여 운행해야 한다.

안씨의 경우 시속 60㎞에서 20%를 감속해 48㎞ 이하를 유지했어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허 부장판사는 안씨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지난 4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안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