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순간마저 아름다운 몸짓으로 빚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장 크리스토프 마요의 '발레 매직'
모든 배역 감정과 캐릭터 잘 살려

긴박한 장면 슬로 비디오로 표현
미니멀한 무대에 화려한 조명
고전과 현대美 살린 의상도 일품
지난 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솔 기자
건물 사이에 이어진 줄 위로 천 조각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이승택의 ‘바람’이란 설치미술 작품이다. 그 흔들리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란 첫 구절로 유명한 유치환의 시 ‘깃발’을 떠올리게 된다. 형체 없는 자연 현상이 과연 조형화되고 미술이 될 수 있을까. 소리가 없는데 아우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우리는 ‘역설’이란 단어를 읽는다. 일상의 감각 안에서는 전혀 연결될 수 없는 지점이 예술 안에서 경이로운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온통 아름다운 역설이 가득했다. 이 작품은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 장 크리스토프 마요가 안무를 맡았다.‘기술이냐 표현이냐’라는 예술가들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숙제를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은 완전한 합일로 풀어낸다. 이 지점에서 역설의 미를 읽어낸다. 마요는 “제 작품들은 안무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런 말이 무색하게 기술적인 역량에서 무대에 선 어느 무용수도 제외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작품의 주변 인물로 밀어내지 않고 각자의 감정과 캐릭터를 살려낸 점은 특별했다.

그 어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적극적인 유모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로미오의 친구들을 통해 짓궂은 10대 소년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견한다. 두 젊은 연인의 시신 앞에서 로런스 신부가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이 죄책감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고 앞으로 살아갈까 연민을 품게 된다. 기술을 추구하거나 보여주는 데 방점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동시에 감정선 안에 완전하게 녹아 있는 그 기술들에 혀를 내두르다가 역설의 매력에 휘말린다.

정점은 마지막 장면이다. 죽음의 그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가장 큰 역설이다. 티볼트가 죽는 순간은 어떤가. 긴박하고 숨 막히는 그 순간의 역동성을 슬로 비디오처럼 연출해 무거운 침묵으로 이끌어낸다. 관객은 입을 틀어막고 타악기의 강한 타건 안에 자신의 심장박동수를 맞추게 된다.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영화적 기법을 적용했다. 각각의 장면을 로런스 신부의 회상과 시각을 통해 이끌어 가는 점이 특히 그렇다. 몬터규가와 캐풀렛가의 갈등과 다툼,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과 결혼, 두 연인이 어긋한 신호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 장면은 로런스 신부가 통탄과 울음 안에서 과거를 되짚어보는 상황이다. 그래서 순간순간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장면은 한 장의 그림처럼 멈춰선다. 그때 고전과 현대의 미를 조화시킨 제롬 카플랑의 의상은 그림 같은 미장센을 완성하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한다.

조명 디자인도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어떤 장식도 없는 백지상태의 무대세트를 세운 건 간결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접근이지만 그 위에 입혀지는 조명은 미술적 색채와 감각을 끌어내 역시나 역설의 코드를 읽게 한다. 작품을 보는 내내 비울 때 채워지고, 놓을 때 잡게 된다는 지혜를 마주하게 된다.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작품의 서사를 이끄는 강력한 끈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안무가가 자신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면서도 음악만큼은 바꾸지 않는 건 그 음악이 지닌 미적 매력이 대단해서다. 발레 음악에 애정이 깊은 프로코피예프는 이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음악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다. 이 음악에 로런스 신부의 회상을 ‘움직이는 내레이션’으로 덧입힘으로써 마요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한 것이다.셰익스피어의 원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으로 몬터규와 캐풀렛 두 가문이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이 비극인가, 희극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결말이다. 그동안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안무가마다 자신의 철학이 담긴 마무리를 보여줬다.

존 크랭코는 두 사람이 포개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사랑이 맺어지는 결말을, 케네스 맥밀런은 끝내 연인의 손을 잡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비극의 절정을 보여줬다. 마요는 두 젊은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로런스 신부의 통탄으로 막을 내리게 함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

사랑은 이래저래 거부할 수 없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리 모두가 가진 이 감정과 기억을 상기시키고 하나로 묶었다.

이단비 무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