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亞 미술 경매...장욱진과 달항아리가 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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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소더비 필립스가명작의 가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진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지난 5일 소더비 홍콩 경매에 출품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초상화 ‘폴레트 주르댕’이 그랬다. 2015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4280만달러(약 580억원)에 낙찰됐던 이 작품은 전형적인 '거장이 그린 명작'이다. 소더비가 경매 시작 전 “낙찰가는 4500만달러 이상”이라고 자신한 이유다.
홍콩에서 연 경매 '부진의 늪'
韓 양대 경매사 10월 경매 '주목'
한국 영향은 제한적일 듯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낙찰가는 3490만달러(약 473억원). 8년 동안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100억원 넘게 떨어진(-18.5%) 것이다. 이날 출품된 다른 여러 작품들도 낙찰가가 예상치를 밑돌았다. '시장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던 아시아 미술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中 부자 ‘탈출 러시’ 영향?
소더비 경매에서 ‘큰 장’이 열린 배경을 알면 아시아 미술 경매시장이 얼어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열린 경매의 핵심은 중국의 억만장자 수집가 류이첸과 왕웨이 부부의 소장품을 판매하는 ‘롱뮤지엄 컬렉션 경매’였다. 이들 부부가 상하이에서 운영하는 롱뮤지엄의 소장품을 대거 내놓은 것이다.
미술계에선 “중국의 '큰손'이 왜 작품을 파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돌았다. 억만장자 수집가들이 갖고 있던 명작이 시장에 나올 때는 통상 본인이 죽거나, 이혼하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셋 중 하나다. 이들 부부는 이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미술계 안팎의 설명이다. 롱뮤지엄 측은 “박물관의 소장품을 정리하고 새로운 작품을 사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결과는 실망스러웠다. 1700억원에 이를 것이라던 롱뮤지엄 컬렉션 경매의 낙찰가 총액은 943억원에 그쳤다. 이런 흐름은 다음날 필립스 홍콩 경매에서도 반복됐다. 6일 열린 필립스 경매의 낙찰총액은 약 3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열린 경매의 455억원에서 28%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부자들이 지갑을 닫았다”고 말한다. 중국의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위기가 겹치면서 큰손들도 타격을 입었다는 설명이다. 시진핑 주석의 정책 방향인 ‘공동 부유’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시 주석은 “모든 국민이 공동으로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강조하고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에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하면 ‘시범 케이스’로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재산을 빼앗길 수도 있다”며 “이런 불안감이 홍콩 경매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향은 제한적일 듯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국내 미술 경매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미술계 관계자는 “국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경매에서 중국 컬렉터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며 "중국 경기침체가 국내 미술시장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국내 경매사들은 10월 경매의 ‘간판 작품’으로 한국인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작품을 내세우기로 했다. 케이옥션은 오는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열리는 10월 경매에 총 93점, 약 65억원어치를 출품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욱진의 1989년작 ‘새’(추정가 1억5000만~2억원)와 박수근의 1956년작 ‘가족’(5억~8억원), 이중섭의 1956년작 ‘돌아오지 않는 강’(1억5000만~4억원), 은지화 ‘아이들’(3500만~1억2000만원) 등 한국 대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리스트에 올렸다.서울옥션은 오는 24일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리는 미술품 경매에 총 98점, 92억원 규모의 작품을 내놓는다. 18세기 전반의 달항아리 ‘백자대호’가 이번 경매의 얼굴이다. 경매 시작가 35억원으로 낙찰되면 국내 달항아리 최고가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최근 세상을 떠난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의 8호 크기 ‘묘법 No.171020’(1억~1억8000만원)도 관심을 끈다. 케이옥션과 서울옥션 모두 경매 당일까지 열리는 프리뷰 전시를 통해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