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해인의 햇빛 일기·인간의 시간

▲ 이해인의 햇빛 일기 = 이해인 지음.
"앉지도 못하고 / 눕지도 못하고 / 서 있기도 힘들 만큼 / 온몸에 통증이 느껴지는 / 그런 순간에 / 내가 할 수 있는 / 단 하나의 기도는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통증 단상2' 중에서)
수도자이며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가 투병 중에 써낸 '통증 단상2' 등의 신작을 담은 시집이 8년 만에 출간됐다.

'치유 시인', '위로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해인 수녀는 노년의 신체 변화가 주는 좌절감과 투병의 괴로움을 차분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이를 뒤집어 볼 수 있는 단초도 제공한다.
그는 뼈가 약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는 상황에 대해 '노년 일기'라는 작품에서는 "혼돈 속에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 나의 일상을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며 / 웃어보려 애쓰지만 / 이게 쉽질 않아 우울해 있는데"라고 답답한 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찍은 / 사진 속의 내가 나에게 / 속삭입니다 / '괜찮아요.

자연스런 현상이니 /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 그래도 웃으며 살아야죠'"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시집에는 이해인 수녀가 겪은 아픔에 대한 고백이 꽤 실려 있다.

체험에 바탕을 둔 시들은 "누군가에게 다가가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희망의 햇빛 한줄기로 안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는 시인의 말처럼 읽는 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온기를 전한다.

열림원. 264쪽.
▲ 인간의 시간 = 이강산 지음.
사진작가인 지은이가 대전에 있는 한 철거 직전 여인숙에서 367일 동안 머물며 겪은 일은 기록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일기다.

지은이에게 2021 온빛 사진상, 2022 부다페스트 국제사진상(2022 BIFA) 동상 등의 영예를 안긴 사진집 '여인숙' 취재 과정에서 겪은 일을 소개한다.
폭염에 땀이 줄줄 흐르는 7월 초 0.8평(약 2.64㎡)의 여인숙 독방에 입실한 지은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관념이 붕괴하는 충격을 느낀다. 그를 포함해 12명이 살고 있는 여인숙에 화장실과 세면실은 한 개뿐이었고, 조리실 형태의 주방은 없었다.

벌어진 콘크리트 벽 사이로 철근이 노출된 화장실에는 출입문이 없어 나란히 붙은 공용 세면실의 문을 열어 화장실 입구를 가려야 했다.

겨울에는 한파로 인해 세탁기와 냉온수기가 얼어붙어 빨래는커녕 식수를 걱정해야 하는 곳이었다.

지은이가 머무는 방안의 기온은 영하 1.3도로 떨어졌다.

세면실 입구는 빙판이 되어 고령자나 몸이 불편한 입실자가 화장실이나 세면실에 가는 것은 낙상을 무릅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애초 지은이는 철거 직전 여인숙의 모습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달방 생활을 선택했다.

입실 후 그가 처음 찍은 사진은 술에 취한 채 장맛비가 스며들어 엉망이 된 방에 쓰러져 있는 70대 노인의 모습이었다.

휴대전화로 동의 없이 몰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지만, 인상적인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화면에는 참혹한 피사체가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낀다.

"다시는 몰래카메라 촬영을 하지 말자. 몰카 사진은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는 부도덕이고 비양심이다.

"
이 사건을 계기로 서둘러 사진을 찍는 것보다 여인숙에 사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임을 깨닫는다.

지은이가 여인숙 사람들과 조금씩 소통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동안 낯선 이들은 일종의 가족으로 거듭난다. 눈빛. 32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