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 '후폭풍'…대학 순위 바뀌나

의대 없는 상위권 대학 "인재 뺏길라" 위기감

"정원 늘리면 의대 도전해 볼만"
N수생부터 재학생들 이탈까지
의대 유무 따라 경쟁력 희비 갈려

서울권 非의대계로 편입 늘며
지방대 '텅텅'…악순환 우려도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대폭 확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대가 없는 서울 상위권 대학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의대가 있는 학교와 경쟁력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재학생의 의대 입시 도전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여기에 지방 주요 대학 이공계 학생들은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옮겨가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 시 이공계 ‘블랙홀’이 된 입시제도를 손봐야 의대가 없는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대의 공동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의대 없는 대학들 후폭풍에 ‘초비상’

17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제외한 서울 소재 주요 대학 자연계열(의약학계열 제외) 가운데 의대를 보유한 대학(91.4점)의 입학점수는 의대가 없는 대학(87.8점)보다 3.6점 높았다. 의대 보유 대학에는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중앙대 경희대, 의대 미보유 대학에는 서강대 서울시립대가 해당한다. 서울시립대(87.3점)는 의대가 있는 건국대(87.7점) 동국대(87.5점)보다도 낮았다.

입시업계에서는 정원 확대 시 의대 유무에 따라 대학의 희비가 갈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험생 사이에서는 의대, 종합병원의 유무가 대학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져 비슷한 성적이면 의대가 있는 대학을 선호한다”며 “의대 유무에 따라 대학 순위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대가 없는 대학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한 상위권 대학 입학처장은 “이미 이공계 인재 선발 자체가 어려운데, 의대 정원이 3000명 증원되면 우리 학교 입시 결과가 3000등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라고 했다.다른 대학 관계자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재학생의 대거 이탈이 예상된다”며 “입학 후 대학 공부가 아니라 의대 입시에 매달리는 학생이 늘면서 교내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교·과별 연쇄 이동으로 대학 편입 시장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임 대표는 “중도 이탈하는 대학생이 많아지면서 편입생을 받지 않던 상위권 학교들도 편입생 모시기에 열을 올릴 것”이라며 “상위권 이공계를 중상위권 학생이, 중위권 이공계는 중하위권 학생이 채우는 등 연쇄적으로 학생들이 이동하면서 지방대는 공동화 현상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업계는 발 빠른 움직임

의대 정원 증원 소식에 학원가는 빠르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서울 목동에 있는 한 논술학원 대표는 전날 온라인 사이트에 의대 정원 증원 소식을 전하며 ‘의대 입학의 문이 넓어졌다’는 홍보글을 올렸다. 다른 입시 컨설턴트는 “의대 정원 증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수험생”이라고 홍보했다.입시 대비를 시작하는 연령대가 비교적 낮은 대치동 학원가에는 ‘초등 의대반’ 문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대치동에서 초등 의대 준비반을 운영하는 한 학원 대표는 “강남뿐만 아니라 서초 송파 등 여러 지역에서 입학 테스트 등을 문의해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을 확대하더라도 속도 조절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의대 입학 가능성이 커지면서 10년 이상은 의대 쏠림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의대 정원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이공계 인재 부족 현상 해결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