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위 합병 안돼"…기옥시아·WD 합병, SK 반대로 차질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기옥시아·WD 합병하면 세계 1위
기옥시아 간접투자한 SK는 반대
"소프트뱅크에 협력 제안" 日보도에 SK "사실무근"
낸드플래시 메모리 세계 3~4위인 일본 기옥시아홀딩스와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의 합병이 세계 2위 SK하이닉스의 반대로 암초에 부딪혔다. SK하이닉스는 두 회사의 합병이 무산될 경우에 대비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에 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은 이달 중 합병을 성사시킬 계획이었던 기옥시아와 WD의 합병 작업이 SK하이닉스의 반대로 차질을 빚고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영사 베인캐피털이 기옥시아(당시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할 때 간접투자자 형태로 참여했다.

합병하면 세계 1위..SK하이닉스 '반대'

총 3950억엔(약 3조5778억원)을 투자했는데 2660억엔은 베인캐피털의 펀드에 출자했고, 1290억엔은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자했다. 기옥시아의 주주는 베인캐피털(56.2%), 도시바(40.6%), 호야(3.1%)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같은 인수 구조로 인해 기옥시아와 WD의 합병에는 SK하이닉스의 동의가 필요하다.

기옥시아와 WD는 반도체 시장의 업황 부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합병을 논의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낸드플래시는 PC와 스마트폰 등의 데이터를 기억하는 데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재고가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반도체 부문에서 9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기옥시아와 WD가 합병하면 성사되면 업계지도가 바뀌게 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1.1%), 기옥시아(19.6%), SK하이닉스(17.8%), WD(14.7%)의 순이었다.기옥시아와 WD가 합병하면 합산 점유율이 34.3%로 삼성전자를 넘게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두 회사가 합병하면 규모를 키워 투자 경쟁에 대비할 수 있고, 미국과 일본도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업계 4위로 처지게 된다.

합병 구조는 WD의 메모리 사업과 기옥시아가 결합해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다. 기업가치 기준으로 통합 비율은 기옥시아가 63%, WD가 37%로 평가됐다. 합병 후 WD 측이 지주회사 지분 50.1%, 기옥시아측은 49.9%를 갖게 된다.

등기상 본사는 미국이지만 본사 소재지는 일본, 사장을 비롯해 이사회 과반수는 기옥시아 측이 차지하는 지배구조가 논의 중이다.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면서 앞으로 도쿄증시에도 상장할 계획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은 "SK가 통합 후 WD의 주도권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SK·소프트뱅크 '윈윈' 노린다


전문가들은 SK그룹의 동의와 별개로 두 회사의 합병이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미국과 일본이 승인해도 미국의 수출 규제를 받는 중국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합병이 좌절될 경우에 대비해 SK그룹은 소프트뱅크그룹에 기옥시아 출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영국의 주요 반도체 설계 회사인 암(Arm)을 포함해 인공지능(AI)을 사업핵심으로 삼고 있다. AI 관련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막대한 정보처리에 필요한 데이터센터를 일본 전역에 정비할 계획이다.

기옥시아의 지분을 확보해 관계를 강화하면 기옥시아와 SK하이닉스로부터 고성능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재로서는 소프트뱅크그룹이 기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협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SK하이닉스가 보유한 기옥시아의 CB를 보통주로 전환할 때 지분율은 14.96%로 추산된다. 2018년 인수 당시 맺은 계약에 따라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기옥시아 지분을 15% 이상 보유할 수 없다. 2028년 이후에는 지분을 15%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 초 미국 ‘CES 2023’ 행사장에서 "SK하이닉스가 가진 기옥시아 지분을 보통주로 전환하면 약 40%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옥시아를 인수할 당시 베인캐피털의 펀드에 출자한 2660억엔을 포함한 지분율로 추정된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소프트뱅크그룹에 협력관계를 제안했다는 일본 미디어들의 보도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