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로, 황금천으로...'동갑내기' 韓·美 작가, 런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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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 마이클 버너 -하얀 종이 수백 장이 바람에 나부낀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한지가 전시장의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1932년생 동갑내기 작가
같은 작가로 착각할 정도로
쌍둥이 같은 작품 '눈길'
그 위층으로 올라가면 이번엔 황금색이다. 드레스를 만들 때 쓰이는 화려한 천 가닥들이 벽을 넘어 바닥까지 축 늘어져있다.꼭 쌍둥이 같은 두 작품이 놓인 이곳은 영국 런던의 마이클 버너 갤러리. 1932년생 '동갑내기' 한국 작가 이승택과 미국 작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1932~1997)의 2인전이 열리는 곳이다. 마이클 버너 갤러리와 한국의 갤러리현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행사중 하나인 '프리즈 런던' 기간을 맞아 이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이 전시는 여느 2인전과는 다르다. 보통은 2인전이라도 어느 정도 작가마다 공간을 구분하는데, 여기는 작품이 이리저리 뒤섞여있다. 어떤 작가의 무슨 작품인지도 안 적혀 있어서 많은 관람객들은 한 작가의 전시로 착각한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알레그라 페센티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저는 2인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억지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하지만 두 작가는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았죠. 재료도 그렇고, 당대 미술사조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요.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면서 두 작가의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그의 말대로 둘의 작품은 척 보기에도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이 한 번도 소통한 적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승택이 사물의 본래 기능에서 벗어난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밧줄과 철사로 돌을 묶었다면, 바이어스는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를 돌탑처럼 쌓아올렸다. 한지를 매달아 보이지 않는 공기를 시각화한 이승택의 작품은 황금색 천으로 만들어진 바이어스의 작품과 꼭 닮았다.
재치있는 전시 구성도 돋보인다. 이승택이 1980년대 했던 '지구행위' 퍼포먼스 작품 밑에는 그가 만든 달항아리가 놓여있다. 마치 달항아리에서 지구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페센티는 "두 작가뿐 아니라, 이승택의 작품 사이의 연결성도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는 11월 18일까지.런던=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