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가전 사용”…주목받는 유니버설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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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유니버설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고객의 사용 편의를 증대하는 것은 물론 유효 소비자 계층을 확대할 수 있어 가전 기업의 중요한 ESG 경영 이슈로 부각되는 모습이다[한경ESG] ESG Now“시력을 잃어가면서 평소 좋아하던 축구 경기를 못 봐 너무 아쉬웠어요. 그런데 삼성전자의 릴루미노 모드를 켜니 TV 화면 속 움직이는 축구공까지 잘 보이네요.”저시력 시각장애인도 TV를 볼 수 있도록 돕는 삼성전자의 ‘릴루미노 모드’ 임상시험에 나선 한 참가자의 소감이다. 릴루미노 모드는 이미지 가장자리를 강조해 명암, 색, 선명도 등 화질을 더 강하게 표현하는 기술이다.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제외한 1~6급 시각장애인이 TV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은 가전제품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애인, 고령자, 어린이 등 모든 사람이 장벽 없이 편리하게 가전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연구개발(R&D) 자원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흔히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즉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불린다.
삼성전자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TV 시청에 주목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TV를 보는 시간이 굉장히 길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에게 TV 시청은 집 안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여가 활동으로 꼽힌다.릴루미노 모드 기술은 올해 2023년형 네오 QLED TV에 처음 적용돼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내벤처가 개발한 기술로, 2017년 처음 공개할 때는 안경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였다. 이후 본격적인 개발 과정을 거치며 TV 모드 중 하나로 들어갔다. 삼성서울병원과 협력해 67명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LED 버튼 위에 점자 스티커LG전자는 음성인식 제품을 내놓고 있다. 시각장애인, 고령자, 어린이,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고객 등 버튼을 누르기 어려운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이다. LG퓨리케어 오브제컬렉션 정수기는 국내 최초로 음성인식 기능이 들어갔다. 버튼을 조작하지 않고 말만으로도 원하는 용량의 물을 받을 수 있다. 에어컨, 로봇청소기, 냉장고 등 다른 제품도 음성인식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툭 튀어나온 버튼이 없어지며 생긴 불편함도 보완했다. 최근 디자인 유행에 따라 대부분 가전제품은 양각 처리 없이 발광다이오드(LED) 터치 형식의 버튼만 들어간다. 시각장애인은 버튼의 위치나 기능을 알기 어렵다. 정수기에서 냉수와 온수 버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모든 가전에 부착해 쓸 수 있는 공용 점자 스티커를 무상 배포하고 있다. 전원, 동작 및 정지, 와이파이 등 10가지 아이콘과 점자로 구성돼 있다.청력이 약한 사람을 위해선 ‘TV 소리 함께 듣기 기능’을 추가했다. 청력이 떨어진 고령자가 TV 소리를 키우면 함께 TV를 보는 가족이나 주변 이웃이 불편을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LG전자는 TV 스피커와 블루투스 헤드셋 등에 음향을 동시 출력할 수 있게 했다.
LG전자는 제품뿐 아니라 서비스 측면에서도 고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들어 발달장애인 등 느린 학습자나 저학년 초등학생에게 가전제품 사용법과 원리를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쉬운 글 도서〉를 펴낸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는 발달장애 아동이 자주 사용하는 제품인 냉장고를 소재로 한 도서를 무료로 배포했다. 고객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7월에는 〈쉬운 글 도서〉 에어컨 편도 신청받아 배포했다. LG전자는 관계자는 “올바른 가전제품 사용법을 교육하는 '가전학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더욱 다양한 제품군을 소재로 계속 〈쉬운 글 도서〉를 펴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가전제품 설치와 조작을 위한 매뉴얼도 보다 다양한 형태로 배포 중이다. 기존의 작은 글씨로 된 매뉴얼이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층을 위해 지난해 공식 유튜브 채널에 퓨리케어정수기, 에어로타워, 트롬세탁기, 틔운과 틔운미니, 휘센 타워 에어컨 등 8개 제품 사용법을 쉽게 알려주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수어 해설도 추가해 청각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였다.매뉴얼을 눈으로 읽기 어려운 고객을 위해서는 음성으로 읽어준다. 음성 매뉴얼은 서울시 소비재 정보마당 스마트 앱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음성 매뉴얼의 지시에 따라 사용자는 직접 제품을 만지며 문을 여는 방향, 위치 등을 손쉽게 연상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LG전자 세탁기, 건조기, 타워에어컨 등 15개 제품군이 제품 음성 매뉴얼을 제공한다.
전문 수어 상담사, 제품 문의 응대
국내 전자업계 최초로 수어 상담 서비스를 시작한 기업도 LG전자다. 보통 가전 수리 상담은 전화 음성으로 이뤄지는데, LG전자는 2021년 10월부터 제품 지식을 갖춘 전문 수어 상담사가 장애인 고객의 제품 관련 문의를 화상으로 응대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올해부터 이를 확대해 오프라인의 LG전자 베스트샵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고객과 가전 매니저 중간에서 수어 통역사가 통역을 진행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ESG 경영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서비스는 지난해 1000건에 가까운 상담 건수를 기록했다.LG전자는 키오스크로 인한 걸림돌도 없앴다. 휠체어를 탄 고객은 키오스크 높이가 너무 높아서, 시각장애인은 키오스크 화면이 보이지 않아 주문이 어려운 경우를 고려한 것이다. LG전자가 새로 선보인 키오스크는 키가 작거나 휠체어에 탑승한 고객을 위해 주요 메뉴를 화면 아래쪽에 배치한 ‘낮은 자세 모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시력자 모드’를 비롯해 빛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전맹 고객을 위해 촉각 키패드와 ‘음성 메뉴 안내 모드’를 제공한다. 최근 전국 130여 개 서비스센터에 설치된 고객 접수용 키오스크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디지털휴먼 수어 서비스도 도입했다. 고객들은 화면 하단 수어 버튼으로 디지털휴먼의 수어 안내를 받게 된다. 수어뿐 아니라 문자, 음성 서비스도 제공한다.
최예린 한국경제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