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만 비싸고 별 볼일 없다"…中에 추월당한 독일차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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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전기차 반격에 속수무책위기의 독일경제②-‘전기차 쇼크’에 휘청이는 자동차 강국
"다스아우토(DAS AUTO)의 종말"
독일 자동차경영연구소(CAM)의 스테판 브라첼 소장은 최근 독일 주간지 포쿠스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 모터쇼 ‘오토 상하이’에 방문했을 당시 충격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린 이 모터쇼에는 온갖 첨단 전장과 편의 기능으로 무장한 중국산 전기차가 대거 등판했다. 차에 올라타자 별도 조작 없이도 스마트폰에서 쓰던 앱이 그대로 차 안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는가 하면, 차가 뒷좌석 카시트에 탄 아기의 기저귀 온도를 감지해 운전자에게 ‘기저귀를 갈아주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아날로그 독일, 전기차 시대 낙오 위기
자율주행 기술에서도 중국차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은 지난 4월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테스트를 공공도로에서 성공시키며 주목받았다. 이제 자율주행 레벨 3 상용화에 나선 독일 메르세데스벤츠·BMW보다 진전이 빠른 셈이다. 브라첼 소장은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의 분야에서 독일은 이미 작년부터 중국에 뒤처졌다”며 “중국 전기차는 낮은 가격뿐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놀라운 수준”이라고 말했다.반면 ‘아날로그 독일’은 전기차의 핵심인 소프트웨어 기술 경쟁에서 애를 먹고 있다. 지난달 5일 독일 뮌헨에서 만난 우버 기사 보리스씨는 “독일인도 독일차를 타면서 순정 내비게이션이 아닌 안드로이드 오토나 애플 카플레이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현실이 이런데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스마트카’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독일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은 여전히 가장 안전한 통신 수단으로 팩스를 쓰고 있었다. 결국 독일차 업체들은 전기차·소프트웨어 기술 확보를 위해 ‘디지털 중국’과 피를 섞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 7월 7억 달러를 투자해 중국 샤오펑의 지분 5%를 사들이고 전기차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아우디 역시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SAIC)과 손잡고 커넥티드 전기차 개발·생산에 착수했다. 30여년 전만 해도 자동차 생산 능력이 없던 중국이 독일 업체들과 합작했던 것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차를 ‘값싼 모조품’ 정도로 취급했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프리미엄차 시장에서도 압박↑
독일 밖에선 판도 변화가 더 극심하다. 특히 독일 자동차는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중국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잃고 있다.폭스바겐은 지난 15년간 지켜온 중국 자동차 시장 1위 타이틀을 올 초 토종 전기차 브랜드 BYD에 빼앗겼다. 2019년 23.6%였던 독일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9.1%로 줄었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한 독일차는 중국에서도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이젠 ‘디지털 기능은 부족하면서 비싸기만 한 차’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자국 시장을 장악한 BYD는 올 상반기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합친 전 세계 신차 판매량에서 벤츠와 BMW를 제치고 10위로 뛰어올랐다. 독일차 브랜드는 대중차뿐 아니라 주력 시장인 고급차 부문에서도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에 따라잡히고 있다. 올 상반기 가격이 4만5000유로(약 6444만원) 이상인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판매 1~7위는 모두 중국차가 차지했다. 8~10위에 그친 벤츠와 아우디, BMW는 판매량이 1위 리 오토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독일 일간지 한델스블라트는 “프리미엄 브랜드 경쟁에서도 밀린다면 독일 자동차 산업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생존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뮌헨=빈난새 기자